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쇠고기 이외에는 아예 먹질 못하는 특이 체질이기에 그렇다. 그 몸에서 태어난 체질이니 어찌하랴 그 아들인데…. 이 특이체질이 조금씩 변해 가는지 울산으로 주거를 옮겨와서는 돼지고기를 슬슬 먹기 시작한 것이다. 대단한 신체적 일대 변화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어느 돼지국밥 가게는, 오래 전 울산시장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고 한다. 소위 ‘신지식인상’이라고 하는데, 돼지고기의 특이한 비린내를 없앤 요리법을 도입하여 서민들에게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서다. 그래서 그날부터 단골이 될 정도로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본업이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강의하는 날이면 그날은 효과 만점의 열정강의가 된다. 아니 돼지고기에 그런 에너지가 들어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울산대학 옆쪽에는 골목이 여러 개 트여있고 여러 음식점들도 즐비하다. 작은 공원을 낀 다소 조용한 장소에, 새로운 고깃집이 하나 들어섰다. 어쩌면 대학의 제2 식당이라 할 정도로 교직원들이 많이 왕래하는 맛집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서빙하는 종업원에서부터 여주인까지 늘 인상이 밝다. 심지어 고기를 쓸고 있는 아저씨까지도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니 또 찾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점심 먹으로 온 식객들도 덩달아 즐겁고 기분이 좋다. 고작 쇠고기국밥 한 그릇인데도 남녀노소 소탈하게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 살맛나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아니 다른 식당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왜 그러한 ‘묘한 분위기’가 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가게의 사람들, 특히 가게주인을 비롯한 종업원들의 밝은 눈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봉사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 가게의 여주인은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독거노인은 물론 소외계층에 있는 사람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기부봉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재능기부’를 해도 작은 선행이 되지 아닐까? 필자는 오래 전 중학교 때 생일선물로 하모니카를 선물 받았다. 애절하게 나는 그 소리에 매력을 느꼈는지 공부가 싫을 때는 자주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금은 우리학생들과 더불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할 정도로 조그마한 행복감을 맛보고 있다.
한 때는 울산에 있는 여러 어린이집에서 재능기부도 해보았다. 기껏 해봐야 3살에서 5살 정도 아이들에게 말이다.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면 그들의 눈동자는 그지없이 맑아 보인다.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 소리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장난만 치는 아이도 있다.
1막이 끝난 후 한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선생님!…”하면서 조용히 부른다. “왜?”하고 물으니, “선생님! 힘들어 보여요!”라 한다. 원래 하모니카는 입으로 부는 악기라 호흡조절로 얼굴이 붉게 보이기도 한다. “선생님! 이제 다 끝났으니까요. 내가요… 이 하모니카를 각 속에 넣어줄게요…”라 한다. “아! 그래?…”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모니카 각 속에 하모니카를 담고 있는 아이의 예쁜 고사리 손을 유심히 보니 너무나도 앙증스럽고 귀여운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이 기특하고 더없이 해맑을까 생각하니, 그날 필자는 차마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한해가 또 지나가고 있다. 조그마한 봉사정신을 생각해보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닐까?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