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조형유물을 보며 21신상(神像)조각 ⑦
신라의 조형유물을 보며 21신상(神像)조각 ⑦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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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의 수준이 단순기능의 반복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기막힌 패스 연결로 네트가 흔들릴 때 스포츠 앵커는 “예술작품”이라고 중계한다.

우리는 스포츠를 경기 전체가 관망되는 운동장 속에서 선수들의 순간 동작이 전체적으로 포착, 연결되는 경기를 즐긴다. 그러나 TV중계는 선수행위를 초점으로 하기 때문에 그 동작을 분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원형의 야구방망이와 공이 맞부딪치는 감각 점(点)에서 백구가 펜스를 넘는다. 그런데 한국야구선수들이 타격 직전의 동작으로 어깨에 배트(bat)를 매고 있거나, 두발 고정하는 정지동작에서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공의 타격과 수비의 전환동작이 어렵다는 기초사실을 잊은 것 같다.

이러한 자세는 공을 향한 타격과 수비관계에서 타이밍이 맞지 않는 자세일 뿐이다. ‘안타냐 삼진이냐’ 승패의 갈림 선상에 임한 타격수가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식의 여유나 반대의 불안감을 감춘다는 심리상태를 한국의 투수들은 모를 수도 있다. 이대호 선수의 타격 자세는 결국 국내용 슬로거임을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위선적인 공격자세는 한국에서만 통용될 뿐이다. 이승엽의 타격자세를 관찰하면 더욱 극명하다.

오히려 투수가 불안을 느낄 정도의 빈틈없는 공격자세가 최선의 승기임을 이승엽과 이치로는 알고 있다. 엊그제 LA 다저스와 에인절스 경기에서 선발의 박찬호도 배트를 어깨에 얹고 있었다.

감독의 수정지시도 없는 한국형 훈련에 길들여진 최희섭 선수는 미국야구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돌아보는 좌표에서 수정방향이 보일 것이다. 각종의 악습관적인 경기자세는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보이고 기대하는 홈런은 넌센스( non-sense)이고 행운이지만 그 행운은 연속되지는 않는다.

2002월드컵에서 4강 진입의 행운도 있었으나, 기능훈련 만으로는 승리의 기대는 요원하다. 다시 말하면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훈련의 질과 양이다. ‘나는 야구선수, 너는 축구선수’로 활약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감각수준(水準)이다.

미술이나 스포츠, 영상미디어, 더욱이 정치나 기업이 표현방식을 달리할 뿐이지 미학(美學)원리는 같아서 균형과 조화, 비례와 강조 등 구성요소들의 조합운영 감각에서 그 수준이 나타난다.

스포츠 등의 소양이 전무한 것 같은 한국정치가의 정치 부분만의 전념결과는 스포츠, 예술, 즉 간접 생활 부분의 문화를 등한시했고, 국민생활에 미치는 결과로 나타나서 격렬한 폭력시위로 분출되는 것 같다.

권력자들은 권력에 전념해서 학교 운동장을 잔디로 할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맨땅에서 부상을 주저하기 않고도 4강에 진입했으니 그야말로 장하다. 유니폼색상에 관한 문제는 미술에 속하는 것이기도 해서 차기로 미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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