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사전에 시행착오란 없지요”
“우리 팀 사전에 시행착오란 없지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3.12.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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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현중 선박연구소 기원
모형선 제작의 달인, 수출 선박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 최용수 현중 선박연구고 기원.

쇠붙이로 가득 찬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나무 다듬는 솜씨 하나로 이름값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박 건조에 앞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모형선 제작의 장인(匠人)급 일꾼들이 바로 그들. 선박사업본부 선박연구소 제작계측연구실 소속 최용수 기원(58·29년 근속·사진)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올 연말이면 정년을 맞이하는 최씨는 섭섭하기는커녕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 과거 같으면 어쩔 수 없이 정든 근무지를 떠나야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180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와 노조 양측의 따뜻한 배려로 지난해부터 ‘2년 연장근무’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연장근무의 수혜자는 같은 연구실에서 호흡을 같이하는 동갑내기 강갑이 기장(58, 34년 근속)을 비롯해 대략 1천 명 남짓. 일자리 구하기가 열사(熱沙)에서 오아시스 찾기보다 더 어려운 판에 감로수라도 만난 기분들이다. ‘신(神)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지난 주말, 보안이 철통같은 사내 선박연구소를 회사 측의 배려로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제작계측연구실 이곳저곳은 최 기장이 직접 안내했다. 맡은 일에 너무 몰두한 탓일까, 그의 동료들은 한눈조차 파는 일이 없다, 열에 아홉이 30년 근속의 베테랑들이라 했다.

기량이 수준급에 올라야 호칭이 주어지는 ‘기원(技沅)’ 4명에 한 계단 위의 ‘기장(技長)’도 2명이나 된다. 기원 경력 5년차인 최씨와 같은 연구실 근무자 10명 전원이 ‘모형선 제작의 달인’들이다. “자부심 하나는 다들 엄청나지요. 컨테이너선이고 벌크선이고 간에 해외수출 선박들은 모조리 우리 손을 거친다는 그런 자부심 말입니다.”

모형선 제작에는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참여한다. 실물의 1/50∼1/30 크기다 보니 길이는 대개 7∼8m쯤 된다. 제작 기간은 선종(船種)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대충 12일에서 13일쯤 걸린다. 운항에 필수적인 엔진 등 최소한의 미니어처 장치도 함께 장착한다. “모형선은 표면이 매끄러워야 측정값이 잘 나오지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다.
 

▲ 동료직원의 일을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최용수 기원(왼쪽).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최씨의 설명은 모형선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200m 길이의 계측용 ‘예인수조(曳引水槽)’에서 더 길어졌다. 시험운전을 위해 도크로 옮겨지는 완성선은 그 거죽이 철제지만 모형선은 그 재료가 목재다.

각종 계측은 모형선을 수조의 출발선상에 띄운 다음 예인기로 200m 구간에서 끌어당기는 사이에 이뤄진다. 파도의 세기, 선박의 속도 등에 다양한 변수를 대입시키면서 선체(船體)저항, 조파(潮波)저항 값이 어느 정도인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따져 바른 측정값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시행착오요? 그런 건 우리 사전엔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지요.” 최씨의 분명하고도 단호한 답변에는 충만한 자신감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최용수 기원이 현대중공업의 문턱을 밟은 시점은 1984년 11월 21일. 이제 만으로 쳐서 29년을 갓 넘겼다. 2년 더 근무하다 보면 보통햇수로 쳐서 32년을 채우게 된다.

그 점 말고도 최씨에겐 남다른 행운이 더 있다. 회사 측 배려 덕에 두 아들 녀석까지 현대중공업 가족의 일원이 된 점이다. 2000년에 입사한 첫째(37)는 중앙기술연구원에서, 둘째(35)는 생산기술연구팀에서 기량을 다져가고 있다. 솜씨는 두 녀석 다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최씨는 젊어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선박과의 인연도 꽤나 깊다. 입사 전에는 요트 제작회사(경일요트)에서 3년간 일했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현대미포조선에서도 3년간 근무했다.

그는 스스로를 ‘목공(木工)’이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고향마을인 울주군 서사리의 자택이며 가재도구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이 직접 손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주말엔 농사일로 소매를 걷어붙인다. 배농사 감농사도, 논농사 밭농사도 짬만 나면 돌보곤 한다. 부인 김명숙 여사(54)는 그런 남편 덕분에 고생은 절반이고 행복은 갑절이다.

선박과의 인연은 그의 취미도 해양성(海洋性)으로 바꿔 놓았다. 한때는 스킨스쿠버 취향이 강했고 요즘은 포항에 원정까지 갈 정도로 낚시에도 일가견을 쌓았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엄마 품 같은 일터에 가 있다. “세계 일류 기업답게 안정된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배려해준 회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쉬는 시간, 휴게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던 39년차 서정만 기장도 최씨의 말에 대한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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