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백 속의 ‘작은 사전’
핸드백 속의 ‘작은 사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2.0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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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개 노선이 얽혀있는 동경의 어느 지하철 안이다. 출근 러시아워를 피한 조금 한가한 11시경의 모습이다. 대부분 승객들은 제법 여유로워 보이는 한편 서두르는 사람이라곤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눈에 띄는 것은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책을 보고 있는 장면. 그중 옆자리에 앉아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도 핸드백에서 책을 끄집어내어 진지하게 보고 있다. 다름 아닌 조그마한 문고판 책이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은 본의 아니게 무심코 그 일본 아주머니의 책표지를 보게 됐다. ‘유의어사전’이어서 깜작 놀랐다. 아니 이런 것을 핸드백에 소지하면서 다니다니!

그들은 100여년전, 1909년에 벌써’日本類語大辭典’을 발간했다. 수십만 어휘가 수록되어 있는 대사전이다. 독자들의 호응이 좋아 1980년 어느 한 출판사가 국민들에게 알기 쉽고 널리 익히기 위하여, 축쇄판문고 ‘類語の辭典’으로 개명해 두 권으로 복각 발행한 것이다. 일반적인 국어사전이 아니어서 더욱 유니크했다. 이것이외에도 같은 종류의 유의어사전을 1951년 이후 수십 권을 발행하여 자국 언어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는 곧 나라의 힘이 아닌가! 우리의 것은 어떤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조금 전, 지하철에서 어여쁜 모자를 쓰고 ‘작은 사전’에 열중하고 있던 그 일본 아주머니는, 아마도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또는 지인에게 안부의 편지를 쓰고 있는 듯하다. 문고판 사전을 조용조용 넘겨보면서 어떤 말을 선별해 사용했는지도 궁금하다. 뭔가를 찾았는지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사뭇 만족해 보였다. 이 한사람의 일본인의 국어사랑이 한국에서 온 필자에게는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잠깐 여기서 ‘유의어’에 대해 알아보자. 이것은, 의미가 완전히 같은 동의어와 그 이외의 유의어로 나눌 수 있다. 동의어를 보면 ‘단풍’, ‘홍엽’과 같은 많은 유의어가 있다. 그러나 유의어 전체에서 보면 꽤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한일(韓日) 양 언어 모두, 유의어 사이의 의미적인 관계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한 쪽이 다른 쪽에 포함되는 것. 예를 들면, 자주 사용하는 어휘인 ‘적중’은 의미의 범주가 꽤 넓다. 그렇지만 ‘명중’은 너무나 의미가 한정돼 있어 ‘적중’의 범위 안에 포함될 것이다. 둘째 부분적으로 겹치는 것. 즉 ‘시험’, ‘테스트’와 같이 같은 의미의 경우도 있지만, 학습을 측정하는 ‘시험’과 실험을 뜻하는 ‘테스트’에서 보듯 꽤 다르다. 셋째 겹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로 학술용어에 많은데 ‘음운’, ‘음성’ 등 전문적인 어휘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체와 어종(語種)에 의하여 분류를 추가할 수 있다.

이왕 내친 김에,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문헌’ 한권을 소개하자. 일본어 경우에도 ‘조사’, ‘조동사’ 라는 품사가 있다. 일찍이 이것에 대하여 의미 분류한 연구는 감히 놀랍다. 그들은 연구 초, 대표적으로 4만8천개의 예문을 심사숙고해 카드에 채록했다. 그것도 1949년 1년간 발행된 아사이신문, 문예춘추 등 그 당시 ‘신문 잡지 34종’을 대상으로 그 용례문을 발췌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조사 조동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정리하였으니 대단한 연구이었을 테다. 최종 이것을 종합 정리해 1951년 그들의 국립국어연구소에서 ‘現代語助詞助動詞-用法と實例’라고 제호해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이후에도 여러 권의 이와 유사한 사전을 발행했는데, 이전과 달리 단어의 ‘구분사용’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스스로 긍지를 갖게 하고 그들의 국어사랑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한일 관계가 냉랭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일본인들의 국어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한국어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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