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歌애창은 울산사랑의 시작입니다
市歌애창은 울산사랑의 시작입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2.0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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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정수라는 1980년대 초반 국민 디바였다. 그가 부른 ‘아, 대한민국’은 당대 최고의 인기가요였다. 그러나 본인은 당시를 “별로 떠올리기 싫은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건전가요’ 앨범에 넣은 노래란 것이다.

1990년대까지 음반이나 테이프의 맨 끝 곡으로 올린게 이른바 건전가요다.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고 자유로운 영혼과 다양성이 생명인 음악계마저 정부가 나서서 검열하고 심의하던 시절의 얘기다. 애국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한 강제조치였다. 가왕 조용필도 1987년의 9집에 ‘마도요’ 등 대표곡들과 함께 마지막에 건전가요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 어느 날 들른 한 식당 주인은 ‘울산시가’를 ‘듣기 좋은 꽃노래’라며 외면했다. ‘시가(市歌) 애창이 울산사랑입니다’란 말이 나오자 급히 채널을 돌려 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홍보방송이 꽤나 지겨웠던 모양이었다. 원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들으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등 시가애창 홍보비는 1년에 6억원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시가 애창과 울산사랑을 꿈꾸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 울산의 모든 방송은 ‘울산시가(市歌)’를 매일 반복 방송 중이다. 어느 인사는 이를 매일 되풀이 시청하다 보니 “자칫 울산이란 도시 자체가 거대한 조직체나 하나의 기업체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외지에서 온 지인은 마치 획일화된 도시, 하나의 목표를 정해 모두가 일률적으로 달려가는 도시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울산시가의 인상이 이 정도에 그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와 달리 ‘서울의 찬가’는 특이한 시가이다. 길옥윤이 1966년에 만든 서울찬가는 아직도 대중의 사랑이 식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우선 패티김이 부른 서울찬가는 경쾌하고 밝다. 가사도 곡조도 대중적이고 희망적이다. 아무나 따라 부르기 쉽고 서정적이다.

울산시가 역시 이에 못지 않다. 오히려 더 건전하다. 그런데 여전히 대중화되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모범생이나 교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연 시가는 모두 엄숙하고 도덕적이고 역사를 강조해야만 할까. 계도의 대상, 반복 청취를 통한 암기나 강요, ‘일체’를 위해 동원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울산시가는 2000년 전국 공모를 통해 71개 응모작 중에서 선정해 만들었다.

“장중하면서도 가사가 울산을 잘 상징했고 조화나 운율, 대중성, 미래지향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당시 선정위원회가 밝혔다.

목포의 눈물, 소양강 처녀, 부산 갈매기는 모두 그리 건전하고 엄숙하진 않지만 그 지방을 상징하는 노래로 사랑받고 있다.

울산을 소재로 한 노래도 많았다. 북한에서도 유행한 민요 울산 아가씨를 비롯해 김상희의 울산 큰애기, 윤수일과 태진아가 각기 부른 태화강 연가, 울산아리랑 등이다. 박목월 선생이 만든 울산시가도 기억난다. 그런데 모두 사라졌거나 지금의 시가로는 적절치 않다.

가장 최근엔 2005년 울산 전국체전 개폐회식 주제가로 “불매, 불매, 불매야~”를 만들었다. 근데 그 노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른다.

지금 TV에선 “울산시가 애창이 울산사랑의 시작“이라며 웅장한 합창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듣는 나는 건전가요가 자꾸 연상된다. 그런 내가 불온한건가 울산시가가 너무 건전한건가.

울산시 상징물도 바꾸는데 이 참에 제2 시가, 함부로 흥얼거릴 울산노래 하나 있으면 어떨까 소망한다.

<김잠출 국장/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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