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를 다듬으며
쪽파를 다듬으며
  • 울산제일일보 기자
  • 승인 2013.12.0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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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안 무시로 상치나 깻잎 등을 얻어 먹어왔던 지인으로부터 또 쪽파 한 소쿠리를 또 얻었다. 밭에서 방금 뽑은 쪽파는 줄기와 하얀 뿌리가 어찌나 싱싱한지 마음마저 푸르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쪽파는 그 용도가 참 다양하다. 파김치를 담아도 맛있고, 굴을 넣고 파전을 부쳐서 먹어도 맛이 그만이다. 유난히 쪽파를 좋아하는 나는 흥에 겨워 이 파로 무엇을 해 먹을까 궁리하며, 거실 한 가운데 넓게 신문지를 깔고 TV를 틀어 놓은 채 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먼저 파 뿌리부터 싹둑싹둑 잘라냈다. 한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줄줄줄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집안에 퍼지기 시작한 파 냄새는 급기야 온 집안구석구석을 점령해 버렸다. 춥다고 베란다 문을 닫은 채 참고 있으려니 몸뚱이마저 파로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삼십분 가량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옆구리가 결리고 사지가 뒤틀렸다. 눈물 콧물을 훔쳐가면서 더디어 파 다듬기를 끝내니, 스스로에게 뿌듯한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수월해 보이는 파 다듬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미미한 먹거리도 땀 흘린 농부의 수고를 거쳐야 하고, 치열한 상인들의 노고를 거친 다음, 주부들의 정성이 들어간 후에야 마침내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우리가 무심히 넘기는 일상 속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알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던 시절이 있었다. 부엌에서 대가족의 음식을 장만하시는 엄마는 손이 열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분주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된장에 넣을 쪽파를 뽑아오는 일은 늘 내 몫이 되곤 했다.

텃밭에 심겨진 쪽파를 뽑아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파를 뽑을 때 검은 흙과 함께 꿈틀거리며 따라 나오는 지렁이였다. 사정없이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너무 징그럽고 무서웠다. 파고 뭐고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한달음에 십리 밖으로 도망을 치고만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무사히 파를 뽑으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뽑은 쪽파는 잘 다듬어서 밭 옆에 흐르는 개울물에 씻어서 가져가야 했다. 몇 뿌리 안 되는 쪽파였지만, 다듬을 때 손에 묻는 미끈거리는 촉감도, 씻을 때 미끈거리는 껍질의 느낌도 정말 싫었던 것이다. 그 미끈거리는 감촉은 마치 지렁이가 피부에 닿기라도 하는 듯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나는 제법 어른 가까이 자라서도 무슨 반찬이 되었든 간에 쪽파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를 않았다. 파전을 먹을라치면 그나마 잎사귀는 괜찮은데 미끄러지면서 불거지는 파대가리는 너무 싫었던 것이다. 양념으로 들어간 쪽파도 모두 건져내다 버리곤 했다. 어른들께 들을 꾸중이 두려워 음식에 든 쪽파를 몰래 건져 버리는 일도 여간 땀나는 모험이 아니었다.

지금 쪽파를 다듬으면서 지나간 추억에 잠기는 나는 제법 세상을 많이 살아온 모양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 어떤 음식보다 쪽파 맛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파를 넣은 음식과 안 넣은 음식의 맛은 천지차이가 나는 것도 안다. 게다가 파전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자연 그대로의, 지렁이가 꿈틀대는 영양 만점 흙은, 이제는 그야말로 귀하디귀한 추억 속의 일이 되어 버린 세상이지 않은가.

한 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조금씩은 다 변화하는 것을 본다. 양념처럼 떠올리는 지난 추억도 스스로 각색해가는 아름다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쪽파의 매운 맛과 생의 매운 정도를 잘 버무려서 오늘 저녁 식탁에는 맛있는 파전과 군침 도는 파김치를 올려야겠다.

<전해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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