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올 것 같아요
눈이 올 것 같아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1.0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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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바람 솔솔 불고 길모퉁이 가게의 호호 찐빵에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길에는, 넓적하고 누렇게 변한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이 바람에 뒹굴고 있다. 이 플라타너스란 놈은 가을이 되면 탁구공만한 갈색 열매가 방울같이 달린다. 언뜻 줄기를 보면 자작나무 색깔처럼 신비로워 보인다. 울산대 정문 옆에 엄청 큰 놈이 한그루 서 있어, 출퇴근 길 늘 좋은 느낌으로 감상한다.

이 계절에 비까지 오면 마음은 더욱 쓸쓸해진다. 왜냐하면 으스스한 늦가을과 비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니 오늘은 분명 비가 아니라 눈이 올 것 같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들도 그냥 한마디씩 건넨다. “어, 어쩐지 눈이 올 것 같다 그지’’, “그래 말이야. 눈이 올 것 같네…’라고 말한다.

필자는 연구실에 있을 때 자주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그 이유는 세상만사 조금씩 알아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라디오 방송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신경 쓰일 때가 종종 있다. 어느 좌담 프로의 사회자 말이다. “이번 주제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윽고 토론이 무르익을 때쯤에는 “저는 이러한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돼 집니다”라고.

여기서 잠깐 장면을 바꿔 보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선생님과 꼬마가 교실에서 하는 말이 재미있다. 운동장에 분명히 비가 오고 있는데도 꼬마 아이가 “선생님, 비가 오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요’’, “아, 그러네! 우산이 없는데….’

한편 이번에는 대학캠퍼스 근방 어느 피자가게 앞에서 중학생이 말한다. “이 가게 피자, 먹어보니까 맛있는 것 같아. 완전 맛있어!” 이와 같이 ‘올 것 같다’, ‘생각돼 집니다’ 등 소위 말하는 ‘­같아요’신드롬에 대한 문제이다.

수업 중 대학 2학년생이 평상시 늘 궁금해 하던 질문을 한다. “교수님, 3학년 때 배우는 ‘의미론’이라는 어려운 과목이 있는데, 어떤 것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한다. “의미론(Sem antics)이란, 간단히 말해서 의미의 조직적인 연구를 말하지. 학문적으로 말하면 심리학, 사회학, 철학 등 주변 학문과 같이 연구하는 아주 폭넓은 학문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할까? 으응, 다음과 같은 ‘연구대상’이 있는데…” 계속해서 설명해 준다.

“즉, 어휘의 통사적(通史的) 의미 변천, 의미 분류, 언어지리학적 의미의 분포, 그리고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 속의 의미전달과 변용(變容) 등 폭넓게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 교수는 그런대로 제법 구체적으로 또박또박 설명했는데, 학생이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앞에서 말한 ‘같아요’ 표현에 대한 실례들은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나타난 ‘의미전달과 변용’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해본다면 딱 들어맞는다. 이 표현은 일단 ‘겸양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창 이치를 따져야할 청소년 시기에 선악(善惡)을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칫 ‘책임회피식’으로 돼 버리는 위험천만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표현을 되풀이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른이 된 후 ‘불투명한 태도’나 ‘무사 안일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따다 놓은 당상이다.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이 현상은 다음 ‘요인’ 때문으로 본다. 먼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입시문제가 대부분 ‘객관식’이라는 점. 그리고 또 ‘­일 것 같다’ 등과 같이 언어구사가 쉽고, ‘불확실한’ 현 시대에 살기에 언어에도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점. 더욱이 ‘seem’표현이나 ‘ようです(­인 것 같습니다)’, ‘思われます(­생각 됩니다)’와 같이 ‘외국어’표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으로도 본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용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우리의 말 ‘한글’! 영원히 아름답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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