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펄떡이는 시장
살아 펄떡이는 시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1.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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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모임이 아닌 ‘번개팅’에서 그야말로 번개처럼 이뤄진 통영 여행 결정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슬그머니 흘러나온 그 쪽으로의 여행운운은 마치 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붙듯 화르르 타 올랐고, 바로 며칠 뒤 여행을 가는 것으로 후딱 결정이 났다. 진실로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대단한 추진력이었다.

이전에는 정보부재 등으로 우리나라에 대해서 조금은 자격지심 같은, 스스로 움츠러드는 마음 같은 것을 지녔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생기고 보는 눈이 생긴 후부터는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다. 외국의 유명하다는 명소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풍광을 가진 나라가 우리나라임을 직접 확인하게 됐다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 보고 듣고 몸담고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천혜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가치를 몰랐으니 그 동안의 못난 생각들이 다만 송구할 따름이다. 통영은 계절에 따른 풍경과 느낌이 무척 다른 감칠맛 나는 고장이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의 한복판에서도 날선 바닷바람이 그리 맵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은 그곳 사람들의 후덕한 인심 덕분인 것 같았다.

유명하다는 관광지와 ‘동피랑’을 둘러본 우리 일행 몇 사람은 가까이 있는 통영 중앙시장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어디를 가든 시장 구경은 언제나 흥미롭다. 출발했던 어제 날씨는 거센 비가 온종일 쏟아졌었는데, 오늘은 쨍하게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달착지근했다. 시장 골목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물결로 꽉 차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좌판 위에 진열돼 있는 각종 해산물과 물고기들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어디다 눈을 둬야할지 볼거리가 지천인 시장 통은 모든 것이 펄떡펄떡 살아있었다. 온 몸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선들의 움직임에 넋을 잃고 있다가 당장 바다로 돌아갈 기세로 물통 밖으로 뛰쳐나오는 그들의 움직임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감탄을 하면서, 착한 가격에 신이 난 일행은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좌판마다 그득한 해산물들은 미사여구도, 화려한 포장도 필요없었다. 진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바지락과 펄떡거리는 생선의 움직임에 온 몸이 저릿거렸다. “어쩌나!”, “어떡해…”를 연발하는 얼굴에서 왁자하니 웃음들이 터졌다.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져 잰 걸음으로 상가를 벗어나니, 큰 길가에는 싱싱할 굴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굴 상자를 쟁여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게다가 시식용 굴을 푸짐하게 담아놓고 맛을 보이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맛있는 굴도 한 상자씩 샀다. 덕분에 지니고 있던 돈도 달랑달랑 했다. 여기저기서 산 물건들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했다.

싱싱한 굴은 특히 딸에게 대인기였다. 입안으로 환하게 퍼지는 맛있는 굴의 향은 머릿속 잡념까지 날려버렸다. 가자미는 잘 다듬어서 미역국을 끊였다. 구수한 국물 맛이 그동안 먹거리에 대해 품었던 불신까지 말끔하게 씻어줬다. 그 옛날 사람들의 삶이 다소 원시적이긴 했을지라도, 멀건 김치 쪽 하나에도 본래의 참맛을 알 수 있었던 그런 삶이 더 행복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새록새록 가지를 치고 있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오동통한 굴과 구수한 가자미 미역국 맛이 그리워서, 어느 날 또 느닷없이 통영으로 달려갈 것만 같다. 역시 여행에는 그 고장의 먹거리가 중요하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마음도 몸도 늘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쳐져 있는 심신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다시 한 번 나를 추스르는 여행. 내가 살아있음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여행. 다시 또 그런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가스 불을 줄인다.

<전해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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