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버지 이야기
어느 아버지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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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너지면 어쩝니까. 우리 수현(가명)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때, 우리 수현이가 이제 그만 돌아오려고 할 때, 그때 내가 버티고 있어야 아이가 날 기대고 일어서지요.”

중학교 2학년인 수현이는 지금 장기결석중이다. 낮 시간에는 문 잠그고 제 방에 들어앉아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고, 밤이 되면 ‘도무지 생각 없이 사는 듯한(어머니 표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새벽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말 잘 듣고 문제없던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변하자 부모님은 아이를 돌려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다.

나무라고, 달래고, 협박하고, 때리고, 담임교사와 연합하여 설득하고… 그러나 수현은 간섭하지 말라며 화를 낼 뿐 무엇이 문제인지 말을 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한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상담실을 찾았고, 몇 가지 심리검사를 통해 아이가 내 보인 마음을 들으신 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너무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습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오남매를 키우셨으니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지요. 어린 시절 하도 배가 고파 빵을 사먹으려고 남의 지갑을 훔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배는 불렸지만 그 후 내가 느낀 더러운 기분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요. 패배감… 수치심… 절망감… 그 후 지금까지 나는 남의 것은 그림자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나는 내 자식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수현이가 비록 문제 행동은 하고 있지만 반드시 돌아 올 거라 확신합니다.

다만, 돌아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우리 수현이가 제일 힘들 테고… 애비로서 그게 걱정이지요.”

“가방 끈이 짧은 나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늘 자신 없고 주눅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를 원망하며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서는 ‘부모라면 끝까지 자식을 지켜야한다.

돈 때문에 못 배우고 못 먹는 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에게 다짐했어요.

‘내 몸이 부서져도 내 가족은 배고프게 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이제 사는 걱정은 없는데… 아이들이 나태한 모습을 보일 때는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러다가 밥도 한 그릇 못 얻어먹지. 나쁜 버릇은 어릴 때부터 바로잡아야 해’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하다 싶게 야단 치고 간섭했지요. 내 입장에서는 그게 사랑이고 부모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

수현 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선택한 양육방법이 아이들에게는 심한 구속으로 느껴졌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버지와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아이는 그 답답함과 분노를 ‘자신을 이용하여 부모에게 상처를 주며’ 풀고 있으니… 무너지는 아버지의 마음을 염려하는 상담자에게 수현 아버지께서는 ‘그래도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야 딸이 일어설 때 지켜줄 수 있다’고 하신다.

지금은 수현이 학교를 거부하고 평범한 친구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반드시 돌아올 딸을 지키기 위해 울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있는 한, 수현이 환하게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올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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