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자동차 도시, 개인 박물관이라도 있어야”
“명색이 자동차 도시, 개인 박물관이라도 있어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3.10.2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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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상 자동차 마니아·주연성형외과 원장… 수영하는 자동차·삼륜차 등 30여종 수집
▲ 자동차박물관으로 사용될 창고형 건물 1층 전시공간의 ‘포드 모델 T’ 앞에서 포즈를 취한 주연상 원장.

사재를 털어 자동차박물관 개관에 집념을 불태우는 자동차 마니아. 남구 삼산현대백화점 맞은편 노른자위 건물(주연빌딩)에서 주연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주연상 원장(46)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평일이나 주말이 따로 없다. 짬나는 대로 태화강역 건너편 GS주유소 옆의 창고형 건물로 달려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4년 전에 땅을 사들였고 2년 전쯤 건물을 지었다. 가칭 ‘울산자동차박물관’ 자리다.

겉보기엔 3층짜리지만 내부는 선반식 4층 구조. 1층 맨 앞자리에서 객을 맞이하는 자동차는 1910년대 전반기, 미국 포드사에서 제작한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치장한 ‘포드 모델 T’다. ‘미국의 자동차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남겼던 차종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닥쳤을때 비교적 싼 값에 구입한 거죠. 가격이 700만원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인터넷 신세를 많이 지지만 미국 사는 친구가 적잖이 도움을 준다고 했다.

아직 정리가 덜 돼 딱 부러지게 선이 그어진건 아니지만 층마다 ‘개념’이 있다. 1층은 클래식한 분위기의 승용차와 스쿠터, 2∼3층은 국민차와 소형차, 3층은 수륙양용 자동차, 4층은 ‘프라모델’(plastic model의 일본식 줄임말)과 RC(remote control) 모형을 주로 전시한다. 전시된 자동차만 줄잡아 30여종. 아직은 외국산이 주종을 이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맹위를 떨친 독일제 수륙양용자동차 ‘슈빔바겐(Schwimmwagen)’, 문짝이 앞쪽에 달려 냉장고 식으로 여닫게 설계된 BMW의 꼬마자동차 ‘이세타’도 눈길을 끈다. “슈빔바겐. ‘수영하는 자동차’라는 뜻인데 이름이 참 재밌죠.”
 

▲ 주연상 원장은 원장실 한 모퉁이를 작업실로 꾸밀 정도로 프라모델 제작에 애착이 많다. 탱크 모형을 만들던 중 잠시 카메라를 향한 주 원장.

최근엔 국산차 쪽에도 눈길을 돌렸다. 포니를 필두로 프레스토, 스텔라, 쏘나타, 르망, 콩코드, 프라이드, 에스페로도 수집목록에 이름을 올렸거나 올릴 계획이다. 기아자동차의 삼륜차도 대열에 합류했다.

“한마디로 잊혀져가는 차들이고, 그 중에서도 ‘포니’는 현대자동차가 한국형 디자인으로 최초로 개발한(1974년) 모델이기에 의미가 각별하죠. 그 전엔 ‘그라나다’나 ‘마크파이브’처럼 미국 포드나 일본 미쓰비시의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니까. 그리고 기아 삼륜차 좀 보세요. 예전에 연탄 배달용으로 많이 사용하던 추억 어린 차 아닙니까.”

전시·소장품엔 자동차만 있는 건 아니다. 엔진 동력을 이용하는 항공기와 탱크도 있다. 대부분 원장이 손수 제작하거나 사들인 모형작품이지만 실물도 한 점 있어 놀라움을 준다. 국내 행사에서 가장 많이 선보인 경기용 경비행기 ‘피츠(Pitts)’라 했다.

“전시품을 보면 엔진의 변천사도 읽을 수 있어요” 자동차용 엔진이 탱크용 엔진, 항공기용 엔진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이만하면 엔진에 대한 지식도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각 층 벽면에다 일목요연한 설명서를 만들어 붙일 참이다. 이 모두 개관을 염두에 둔 작업이다.

주연상 원장의 자동차박물관 개관 준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병원 원장실의 창가 구석은 프라모델 전용 작업실이다. 기차 모형도 탱크 모형도 바로 여기서 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다.

“손재주는 타고난 집안 내력인 셈이죠. 일제 땐 우리 집안에서 대바구니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 배경 덕분에 식구들은 대부분 공대를 지망했는데 저만 의대를 나온 거죠”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어서일까. 직업은 손재주와 무관치 않은 성형외과를 택했다.

인천 생활 2년을 접고 1995년 3월에 울산본점을 개업했으니 울산에 뿌리를 내린지 어언 19년째다. 뒤에 차린 서울 압구정점도 짬짬이 둘러봐야 하지만 자동차박물관 개관 준비 일로 여의치 못할 때가 의외로 많다.

“박물관을 가급적 빨리 개관하려고 서두르고 있죠. 자동차박물관은 제주도에서 나이 드신 분이 먼저 열긴 했지만 박물관이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에서 새로 생기면 비교도 안 될 겁니다.” 집념은 열정으로, 열정은 다시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비록 주위의 협조가 기대에 못 미쳐 아쉽긴 해도 혼자서 못해낼 일은 아니다. 다행히 병원 일 돌보는 박병헌 대리가 개관 일도 같이 도와 여간 고맙지 않다. 필요하면 박물관에서 일할 유능한 해설사를 따로 뽑거나 키울 구상도 하고 있다.

주 원장은 울산의 축제에 대해서도 지닌 생각이 있다. “대표축제 소재로 ‘고래’와 ‘옹기’를 앞세우는 모양인데 울산은 한마디로 ‘자동차의 메카’가 아닙니까. 앞으론 그런 관점에서 인식을 확 바꿨으면 좋겠어요.” 자동차박물관에 대한 집념의 한 단면으로 비쳐졌다.

자동차 수집광이라지만 그에게 자가용 바꾸는 일만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98년산 무쏘를 애지중지 10년 넘게 애용한 것만 봐도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서울서 태어나 동국대 의대를 나왔다. 김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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