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와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보며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보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23 2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목로주점’과 ‘나나’ 등을 쓴 프랑스 문호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들여다 봤다. 정부와 개인, 선동과 진실의 혼동 속에 어떤 판단을 해야할지 모호할 때 지침이 된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간밤에 1938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은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를 거듭 봤다. 졸라가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글이 신문에 실림으로써 정의를 구현해 나가는 길이 반전을 거듭하면서 전개됐다.

영화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정쟁의 현란한 국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국민이 진실에 목말라 있다. 박근혜 정부가 탄생된 지 열 달이 됐지만 국정원 선거개입이란 혐의를 두고 여야를 비롯 국가의 중추 기관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수반이 새로운 기치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면서 국민과 호흡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필부에게도 느껴진다. 나의 손실이며, 사회 자본의 잠식이며, 국가 에너지의 소모다.

영화에서 졸라는 말한다. “조종 당하는 인형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너뜨리는 국가를 바로 세우는 것이 정의다.” 졸라의 이런 신념은 프랑스가 정의로운 국가 위상을 회복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금 우리는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된 의혹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처지다. 정당마다 의견이 갈리고, 언론마저 갈피를 못잡게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00여년전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과 비슷하다.

독일군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과 관련, 유태인 출신 포병장교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조작해 종신유배형을 내린 이 사건은 보수와 진영이 갈렸고, 군부와 문화예술가들이 대립했다. 교회와 법원은 보수와 군부편에 섰다. 유력지 ‘피가로’는 정의를 외치는 졸라의 글을 게재하지 않았고, 신생 신문 ‘로라’는 졸라 편에 섰다. 각국 신문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함으로써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프랑스군 참모부는 범인이 조작된 것을 알게된 뒤에도 사건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국방장관을 비롯 정보장관, 합참의장 등이 포함된 대책회의팀이 내세운 이유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군부의 위신을 지킬 수 있으면 국익에 부합된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프랑스 아카데미로부터 회원가입 초청을 받고 기대에 차 있던 에밀 졸라는,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폴 세잔느로부터 무언의 격려를 받고 드레퓌스 구명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소수의 희생이 아니라, 정의를 통해 군부를 구하는 것이 국가를 구한다”며 군부를 고발하지만, 징역 및 벌금형을 선고받은 직후 영국에 망명한다. 그 뒤 ‘더 타임즈’ 같은 영국 신문들이 졸라의 글을 연일 게재하며 진상을 폭로했다. 결국 사건을 조작한 프랑스군 참모부 2명이 고백과 함께 자살하고 기밀을 유출한 진범이 도주했다. 군부내 총책임자의 사임이 뒤따르며 정의가 이기게 된다.

그로부터 1세기를 훌쩍 넘긴 한국에서 정의에 목마른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에밀 졸라처럼, 이문열이나 황석영이 등장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방법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알고 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예화도 안다. 여기에 ‘정직이 최선’이며 ‘늦더라도 하지 않은 것 보다 낫다’는 격언도 음미할 수 있다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김한태 편집국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