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다운 보금자리주택 대책위원장
박태환 다운 보금자리주택 대책위원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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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주택공사 국민임대주택 계획·재산권 행사 제약
2009년, LH “2011년 착공할 것. 기다려 달라”
2013년, LH “2017년 이후로 연기하자”
“더이상은 못 믿어, 결판을 내야지”
▲ 박태환 다운 보금자리주택 대책위원장.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외사마을 ‘다운 2지구 보금자리주택 대책 위원회(회장 박태환·53·사진)가 지구 지정 철회청원서를 중앙 정부부처에 제출할 예정이다. 지역 강길부 국회의원에겐 이미 전달했다고 한다. 2006년 주택공사가 국민임대주택 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지금까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왔지만 2009년 토지주택공사(LH)의 사업시행 약속을 믿고 지금까지 사업지연을 묵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9월 간담회에서 LH가 사업을 다시 2017년 이후로 연기하자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철회 서명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사업을 계획대로 시행하든지 아니면 이 지역을 첨단산업단지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울분을 터트렸다. 새마을 지도자라는 사람은 정부 공기업을 향해 육두문자를 날렸다. “더 이상 못 참는다”고도 했다. 그동안 바뀐 정책사업 명칭만 봐도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된 국민임대주택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보금자리주택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그러다가 지금은 ‘행복주택’이 됐다. 그러니 정책이 일관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2008년 4월 당시 노무현 정부는 울산시 중구 다운동,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척과리 일원 185만9천m²(56만 2천여평)에 2019년까지 약 1만2천호의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이 일대를 예정지구로 지정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지정 공람공고가 나간 지 1주일이나 지나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 “기가 막히데요. 공람기간이 2주인데 1주일이나 지났으니 까닥 잘못했으면 그냥 넘어갈 뻔 했어요” 박태환 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관할 행정관청인 울주군청과 중구청으로 달려갔더니 주택공사 직원 한명이 나와 있더란다. 그런데 그 직원이 불쑥 찬반 의견제출 용지 한 장씩을 주면서 작성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서사리 외사 마을 사람들은 국민임대주택 지정 반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국회의원들과 주택공사 본사를 찾아가 하소연도 하고 항의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항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우리가 얼매나 힘이 없는지 그때야 알았심더. 우리 고충을 들어 줄라 카는 곳이 한군데도 없더라 카이.”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쳐지는 바람에 토지주택공사(LH)의 자체 부채가 크게 불어났다. 통합 당시 LH 부채는 총 118조원 이상이었다. 그러면서 사업명칭도 보급자리 주택사업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일이 서서히 꼬이기 시작했다. 지정지구로 고시해 놓고 재원이 없어 사업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이 순박한 촌사람들은 다시 LH 본사에 항의하러 갔다가 오히려 설득 당하고 말았다. 어려운 서민을 위해 짓는 것이니 좀 참아 달라는 말에 위원회를 해체하기로 했다. “2011년에는 착공하도록 돼 있으니 그 때까지만 좀 참아 달라 카데요. 우리가 등신이지” 국가 공기업이 장담하는데 3년 정도 연기는 불가피하니 ‘참아주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그 동안 이 지역 주민들이 겪은 불편부당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연녹지(그린벨트)지역 보다 규제가 더 엄격한 곳이 보금자리주택 사업지구다. 그린벨트에선 축사나 창고, 농장 관리사(管理舍)를 지을 수 있지만 보급자리주택지정 지구에서는 일체의 건축행위가 금지돼 있다. 축사는 물론이고 화장실 개·보수도 어렵다. 향후 보상 문제 때문이다. “지금 LH에서 감시원까지 나와 있심더. 불법건축할까봐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기라요” 외사 마을과 서사리 들꽃 학습원 사이를 통과하는 국도14호선은 통행 차량이 많아 사고가 잦다. 마을 경로당 바로 건너편에 ‘사망사고 발생지점’이란 경고판이 지금도 부착돼 있다. 이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국토관리청에 사정을 설명하고 건너편 들꽃 학습원 땅 일부를 얻어내기 위해 교육청을 설득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올해 안에 사업에 착수하기로 지난 8월 합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산이 모자란다 카데예. 국토관리청이 뒤로 발을 빼는 기라요” 보금자리 주택건설 지역이니 구태여 예산을 투입해 도로를 넓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국토청이 사업을 내년으로 미뤘다는게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런 도로 하나까지 맘대로 못 넓히는 기 현재 우리 사정임더” 이 모든 게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지정된 탓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주민, 지자체, LH부산울산지역 관계자가 참석하는 간담회에서 주민들은 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고 한다. 3년 약속기한이 훨씬 지나도록 사업 착수를 미적거리고 있던 LH가 이번에는 정부 부동산 정책과 다운2지구 여건 변화를 핑계로 ‘사업 불투명’을 발표했다. 이전에는 재정사정이 어려워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했다가 이번에는 아예 할지, 말지 모른다고 발표한 셈이다. 2015년까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이쪽에다 임대주택을 지으면 공동주택(아파트)이 남는다는게 이유였다. 그러면서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7년에 다시 결정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 이야기는 더 이상 못 믿심더. 2017년에 짓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교. 이때까지도 속앴는데” 북구 송정지구 40만평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이미 보상을 끝마쳤는데 ‘어느 천년에 이곳에 사업을 시작하겠느냐’는 게 주민들 생각이다. “인자는 더 이상은 몬 참심더. 국가에서 사업을 진행하든가 아이머 지정을 철회해야 됨더” 박 위원장의 어투는 단호하다. 지난 9월 간담회에서 충격을 받은 마을 주민들은 최근 지구철회 해제 청원서를 작성해 지역 강길부 의원에게 제출했다. 다운동 주민 서명까지 받아 이달 중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 울산시, LH공사, 청와대, 정부부처 등 9곳에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개발제한구역 리모델링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도시 인근 그린벨트에 보금자리 주택대신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밀양 사람들만 그래 할수 있능기 아임더. 이번에는 결판을 내야 됨더” 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설 때 박 위원장이 했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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