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과 딴따라 고리끊은 근로자
뽕짝과 딴따라 고리끊은 근로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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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산업문화축제에서 연예인을 초청하지 않고, 불꽃놀이를 제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울산에서 벌어지는 허다한 축제에서 거품을 뺄 신호로 여겨진다.

이 행사를 기획한 울산상의와 노동단체는 울산 40만 근로자에게 ‘공돌이가 아니라 교양인’임을 자각시켰다. ‘뽕짝’과 ‘딴따라’로 유인할 대상이 아님을 선언했다.

박맹우 시장과 김철 상의회장 등은 근로자들의 축전이 열리는 장소를 돌아보며, 근로자들의 정서와 내공이 어느 수준인지 새삼 알았다고 한다.

울산 지도자들이 들여다본 곳을 따라가 보자.

상공회의소에 전시된 사진 가운데 뻘 밭에서 뛰어오르는 망둥어와 어기적거리는 게를 촬영한 ‘망둥어와 게’(현대자동차 지일환)가 있다. 도약과 정체의 대비가 뚜렷한 구도에서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느껴진다.

그리고 강아지 여러 마리가 어미의 젖을 빠는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진 ‘어미와 강아지’(현대자동차 김재석씨)는 자애로운 느낌을 주었다. 꽃양귀비가 우뚝한 모습을 잡은 ‘콧대’(안풍산업 최영선씨)는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겠다는 도도함마저 느껴졌다. 이런 관점을 지닌 근로자들을 딴따라로 홀릴 수 없다.

또 왕골을 엮어 돗자리를 만드는 모습을 잡은 ‘띠자리 작업’(명제산업 지석영씨)과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드는 장면을 잡은 사진(현대자동차 박윤상씨의 배우자 배수원)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작가들의 관심이 읽혀졌다.

‘두부만들기’ 출품자처럼 근로자의 아내가 참석한 사례도 많았다.

‘은월산 능선에서 아버지의 굽은 등을 봤다’는 글을 쓴 김영숙씨는 (주)동부의 전지태씨 배우자다. ‘담쟁이 잎에서 높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겹쳐보고, 위태로운 일을 하는 그의 품속에는 가족사진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이수자씨도 동강의료재단 백성현씨의 배우자다.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의 작품들을 보면 정서와 품격이 깊고 넓다는 것을 알게된다. 확성기로 키운 굉음과 폭죽 몇발은 이들에게 그저 헛웃음 나게 할 것이다.

울산 근로자를 ‘공돌이’로 낮춰 본 적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현대자동차 권재근씨는 ‘지금은 쥐가 고양이 보다 적은 세상’이라고 한 뒤 ‘쥐들이 세상을 평정한 세상’이라고 썼다. 쥐처럼 생긴 ‘마우스’가 책상위에서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재기발랄한 글이었다.

(주)카프로의 현두생씨의 못쓰는 철제 밸브로 학의 모습을 형상화하거나, 자전거 페달 톱니로 사자의 갈퀴를 창조했다. 파블로 피카소가 자전거 안장을 소의 머리로, 핸들을 뿔로 변형시킨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무림P&P에 근무하는 안정애씨가 그린 풍경화 ‘수변공원의 연’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을 연상시킨다. 수면에 졸 듯 고요히 떠있고, 크고 작은 잎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며,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모든 근로자가 다 이런 지적.정서적 폭과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과 50여년 전의 한국은 대부분 수공예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뭔가 제조하는 모든 근로자는 공예가의 후예다. 각자 몰개성적 존재가 아니며 자부심과 기예가 있다.

이번 산업문화축제는 근로자들이 연예인의 부추김이 없어도 스스로 즐길 수 있으며, 불꽃의 현란함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줬다.

<김한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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