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서가에서 찾은 보석
외솔 서가에서 찾은 보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0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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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 동동 외솔 생가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눈물의 보석’을 발견했다.

첫 눈에 띄어 뽑아든 책에는 ‘18세기 묘지명에 나타난 슬픔의 미학’이란 논문이 있었다. 한양대 조자현이란 학자가 쓴 이 글을 읽노라니 마음이 저녁 노을처럼 애잔해졌다.

남동생이 타계한 누이를 보내며 묘비에 새긴 글이 소개돼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다. 나는 그때 갓 여덟살이었다. 장난으로 누워 발을 구르면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의젓하게 말을 하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을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와 금벌 따위 패물을 꺼내 달랬다.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해전의 일이다.

말을 세워 강 위를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이고 돛대 그림자는 물위에 아른거렸다. 언덕에 돌아가더니 가리어져 다시는 볼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거울 같고, 새벽 달은 누님의 눈썹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18세기 이 땅의 한 인물은 120여자의 한자로 이렇게 서정적인 비문을 작성했다. 오늘날 고식적인 묘비문과 비교되는 글이었다.

이 논문은 한글학자인 손재 최기호 박사의 정년을 기념하는 논문을 묶은 ‘한국어의 역사와 문화’란 논총에 있었다. 외솔의 서가에 꽂혀있지 않았다면 보기 어려웠던 논문이었다.

이 논문을 읽은 뒤 ‘장난스런 보물’을 한개 찾아냈다. 그것은 ‘고풍(古風)’이란 오래된 놀이에 관한 글이었다. 이 놀이는 이렇다.

글 읽는 아이들이 책을 끼고 거리에 나섰다가 재상이나 대신이 오는 것을 보면, 책을 길가에 늘어놓고 책 위로 지나지 못한다고 하면, 그 기상을 장하게 여겨 지필묵을 주고 길을 터주기를 청하여 지나는 풍속이다.

서책을 공경하던 시대의 아름다운 글을 외솔서가에서 발견한 기쁨이 컸다. 이 놀이를 설명한 글이 들어있는 책은 외솔의 손때가 묻은 ‘이두자료 읽기사전’이다. 이 책 속표지에는 사전을 편찬한 장세경씨가 고고학자인 손보기 박사에게 드린다는 헌정사가 적혀있어, 이 책이 어떻게 소장됐는지 짐작케 했다.

이 책 옆에는 임동권씨가 1963년에 출판한 ‘한국민속사논고’가 있는데, 도깨비에 대한 고찰이 들어있어 눈길이 빨려들었다. 도깨비에 대해서는 고대 달천철장의 비범한 문화영웅과 비교해 보고 싶던 차에 도움이 됐다. 이 책에는 무려 17가지 도깨비의 거처와 형체 그리고 성격을 비교해 놨다.

또 어떤 보석같은 글이 있을까 조바심내며 뽑아든 책은 ‘한결 국어학 논집’이었다. 이 논문집에서는 1942년 일어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외솔을 비롯 울산출신 영문학자 눈솔 정인섭 선생을 비롯 50여명이 함경남도 흥원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은 내용이 소상히 적혀있었다.

외솔 선생의 손때 묻은 책에 몰두해 있을 때 해는 어느듯 뉘엇하고 도서관 직원이 문을 닫을 시간임을 알렸다.

아쉬웠다. 아직 서가의 한줄만 조금씩 섭렵했을 뿐이었다. 외솔서가는 길게 17줄이 책으로 빼곡했다. 책을 꽂고 나오려는데 한글이름 주창자인 배우리씨가 쓴 ‘고운이름 한글이름’이란 책과 양주동 박사의 ‘려요전주(麗謠箋註)’, 신숙주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등이 눈에 띄었다. 려요전주에는 국보를 자처한 양 박사가 ‘정읍사’며 ‘한림별곡’ 등을 해석한 내용이 반짝일 것이며, 해동제국기에는 울산의 염포를 비롯 임란 이전의 일본과 교류관계사를 엮은 내용이 있을 터였다. 말로만 듣던 책을 가까이 보면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외솔선생이 남겨준 보석 창고는 누구나 언제나 열어볼 수 있다.

<김한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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