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제자농사에 취업장사 32년
“품질보증에 사후관리까지 해드립니다”
애지중지 제자농사에 취업장사 32년
“품질보증에 사후관리까지 해드립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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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학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 이광학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는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365일 농사’, ‘상품’이란 용어의 새로운 해석이 눈길을 끈다. 졸업생들을 취업시키려면 당시에 가서 부탁할 게 아니라 일년 365일 기업체에 들락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4년 동안 애지중지 길러 냈으니 제자들은 자신이 보증하는 ‘상품’이라고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 32년동안 300여명의 상품들을 지역기업체에 취업시켰다. 대학과 지역사회를 잇는 공로로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이광학(65·사진)교수는 지난 1일 학술·과학기술부문 시민대상을 받았다.

그는 얼핏 봐 수더분한 농부다.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는 모양새도 영판 촌사람이다. 그러나 말 속에 흡인력이 있다. 하루 이틀 닦은 솜씨가 아니다. “81년 부임하자 당시 이관 총장이 불러요. 그래서 갔더니 하는 말이 정년퇴임 때까지 학생 취업을 전담하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그는 ‘상품’ 장사에 나섰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장사가 그런대로 잘 됐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졸업생들을 서로 데려 가려고 학교와 교수들에게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요즘은 ‘상품’을 팔 곳이 없어 교수들이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할 정도다. “우리는 세칭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아닙니다. 지방대에다 사립대예요. 교수들이 학생취업을 위해 뛰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노력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그는 교수들이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하는 건 자신이 해야 할 업(業)이라고 한다. 교수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연구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연구를 핑계로 학생들의 진로를 방관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밤을 새워 연구하더라도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약 150편의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이 교수가 부임하자마자 총장이 학생 취업을 전담시킨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1회 졸업생에다 토박이다. 또 대학 졸업 전 삼미 특수강(현 BNG 스틸)에 입사해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기업체 생리에 ‘빠삭’했던 셈이다.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 약 32년 동안 300여명의 제자를 지역 기업체에 취업시켰다. 이들 가운데는 기업 연구소장,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 이사 등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생산기술 연구소 울산청정기술센터장 김억수 박사, 온산 동남정밀 대표이사 겸 연구소장 김용현 박사도 그의 제자다.

해마다 10여 명씩 취업시켜 온 그도 요즘 취업생들의 눈높이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지금보다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80~90년대 중반까지 지역 중소기업들은 기술부족, 재정난 등으로 열악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기술력 향상과 회사 안정성이 확연합니다” 임금도 대기업의 70~80% 수준이고 고용안전도 크게 개선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요즘 현대차 고시, 삼성고시란 말이 있는데 잘못된 겁니다. 언제까지 백수로 빈둥거릴 겁니까” 중소·중견기업에서 2년 경력을 쌓으면 대기업 경력사원 응시자격을 얻는데 뭣 하러 몇 년씩 대기업 취업재수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추천하는 교수를 믿으라고 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형편없는 곳에 제자를 취업시키는 교수는 없다고도 했다.

중소기업체를 다녀보면 가능성이 엿보이는 벤처기업도 적지 않다고 했다. 재정력과 기술조언(consultant)만 갖추면 크게 성장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모 업체는 폐 고무를 공정해 새 타이어를 만드는데 이용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빠른 시간 안에 뜰 것’이라고 했다. 양산 H산업의 경우 폐 고무를 필수적으로 재활용해야 하는데 그 활용도가 이 벤처기업보다 훨씬 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만만한 그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난관도 만만치 않다. 이 교수는 멀지 않아 유니스트(UNIST) 졸업생들이 경쟁자로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럴 경우 지금까지 울산대 졸업생들이 차지하던 일자리 일부가 지역에서 잠식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립이기 때문에 우리 등록금이 유니스트 보다 비쌉니다. 학생들의 능력도 일부 뒤지는 게 사실이고요.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교수들이 우수한 ‘상품’을 만들어 내다 파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등록금이 좀 비싸도 울산대 가라’는 권유가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요즘 이 교수는 제자들 취업전선에서 ‘두더지·억지 전법’을 쓴다. 일단 기업체를 방문하면 최 하부 조직부터 찾아간다. 교수랍시고 사장을 직접 방문하는 일은 절대 없다. 말단 직원부터 설득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요즘은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세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상상 밖의 억지를 쓰기도 한다. 공대 출신을 농협에 입사시키려고 했더니 상대방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대 아이들이 경영학, 회계학 출신보다 훨씬 계산이 빠르다. ‘상품’을 써보고 반품해도 좋다”며 우겨댔다. 그래서 첨단소재학부 출신을 농협에 취업시켰다.

이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취업준비생들에게 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대학만 졸업하면 봉급 많이 주고 상전 대우 받는 곳에 취업될 것이란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봉급은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 오너(owner) 호주머니에서 뺏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기특해서라도 많이 줍니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취업후의 자세까지 일러주고 있었다.

글=정종식·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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