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대구·참치·고래가 만든 문명
청어·대구·참치·고래가 만든 문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0.0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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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는 네덜란드란 국가를 만들었고, 대구는 미국을 성립시켰으며, 참치는 이집트문명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고래도 하나의 문명과 국가 성립의 싹을 틔웠을 것이다.

이 사례를 일반화하면 어떤 수산물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곳에 사람이 몰리고, 문명이 싹트며, 국가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참이면, 7천년전 울산만의 고래는 문명을 싹틔웠음이 분명하다. 그 문명의 존재를 찾고, 그 문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파악하면 울산의 정체성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지금은 풍차와 튤립의 나라로 더 알려진 네덜란드는 청어 위에 세워진 나라다. 네덜란드 해역에 청어가 엄청나게 잡혔다. 청어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 고안돼 유럽 내륙에 판매해 국부를 이뤘다. 청어로 번 돈으로 세계에서 처음 ‘주식회사’라는 것을 창립하고, 넘쳐나는 돈을 간수할 ‘은행’이란 것도 탄생시켰다. 네덜란드란 국가가 성립된 것은 500년전이다. 이 나라의 수도이자 세계적 항구인 암스테르담은 지금 상업항이지만 초기에는 청어잡이 배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절인 청어를 먹는 것이 마치 우리가 거리에서 붕어빵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는 1620년 대구잡이 배가 케이프코드(우리말로 대구곳)에 기항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매사츠세츠주의 보스턴시는 ‘뱃전을 두드리면 갑판에 뛰어오르는’ 대구를 통해 부를 쌓았다. 대구는 보스턴항에 모아진 뒤 말린 상태에서 대서양 너머 스페인의 빌바오항을 거쳐 유럽 내륙에 팔려나갔다. 이 돈으로 하버드와 예일 대학 등을 세웠고, 유입된 인구는 서부와 동부로 확산돼 갔다.

보스턴과 인접한 뉴베드포드항구는 대구가 줄어들자 고래잡이로 부를 축적했다. 고래잡이 산업의 핵심은 그을음 없는 양초원료 생산이었다. 이 항구에 모아지는 고래기름은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를 밝힌다’는 경구가 생겨날 정도였다. 고래산업은 그 외 다양한 산업을 촉진하면서 미국 산업자본의 기틀이 됐다.

암스테르담 청어항과 보스턴 대구항 처럼 어획물은 도시를 이루고 국가 형성의 근간이 됐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고대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인류가 수렵어로에 의존하던 시절, 가장 포획하기 쉬운 대상이 물고기였다. 선사인들이 살았던 유적에 어망추와 결합낚시가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세계 4대문명발상지의 하나인 나일강문명을 본다면, 이 문명도 고기잡이에서 발흥했을 것이다. 이 강의 문명은 해안에서 170㎞ 떨어진 카이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나일강의 하류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 항구의 주요 물고기는 참치였다. 이집트는 지금도 지중해 참치를 가장 많이 잡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모든 강의 초기 문명은 중류보다 하류에서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 많은 영양분이 몰리며, 플랑크톤 생산이 왕성하면서 어패류 서식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런 뒤 농경생활이 확대되면서 강의 중상류로 거슬러 갔을 것이다.

이 같은 문명의 발상과 도시의 성립 과정을 보면, 울산은 매우 깊고 큰 문명사적 기능을 했다고 믿을만 하다. 바닷가에서 거대하고 풍부한 자원인 고래를 집중적이고 주기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그 여유 속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래가 울산에 집중된 까닭은, 울산앞 바다에 무려 2천m 정도 차이가 나는 깊고 거대한 해저절벽이 냉수대를 만들고, 차갑고 따뜻한 해류가 교차하며, 태화강과 외황강 같은 깊은 내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주 글에서 개운포가 한국인의 고향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 연장으로 이번에는 울산만이 문명의 발상지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가설이 참으로 인정되면 개운포는 순례지가 될 것이며 울산만은 의미심장한 문명발상지의 위상을 가질 수 있다.

<김한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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