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노래를 ‘반복’하다
가을노래를 ‘반복’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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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다. 그래도 한낮의 기온은 30도 정도나 돼 아직 덥다. 지난 여름 너무나 더워서인지 이 정도는 더위 축도 들지 않는다. 이제 가을바람 살랑살랑 부니 운치 있는 음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우리가요 최고의 가왕이 한가위 전 울산에서 야심찬 콘서트를 열었다. 타이틀에도 쓰여 있듯이 ‘Hello Hello’라고 반복 손짓하면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빠져들게 했다. 잠깐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보자.

네 눈빛을 보면 꽤 낯 가려 보여/ 자존심도 좋지만 난 너 생각뿐야/ 아~ 손끝만 스쳐도 그댄 벌써 나를 알아보리/ … / Hello Hello Hello (‘헬로’에서)

벌써 회갑을 넘긴 그는, 제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가성으로 남녀노소의 마음을 흔드는 것 같다. 그의 새로운 앨범의 대표곡으로 등장시킨 그 음악을 귀 기울여보면 ‘헬로’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짙어가는 홍엽의 계절에 짧게 반복되는 이 발라드 음악이 모든 이의 오감을 녹여주고 중독 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같이 ‘~로’ 소리로 끝나는 어감은 거부감이 없이 들리는 음인가 보다. 어느 종편 TV 프로에는 ‘Hello Hello’라 제명하여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보태여 이 가을에 60년대 팝송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감미로운 노래를 조용히 들어보자. ‘톰 존스’가 작사하고 그 친구가 작곡한 ‘Try to remember’(9월을 기억해 봐요)를 말이다.

9월을 기억해 봐요/ 참 여유롭고 달콤했었죠/ 9월을 기억해 봐요~/ 잔디가 푸르고 곡식이 익어갔던/ … / 그 기억을 쫓아 가 봐요~/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 / Then follow, follow) (‘Try to remember’에서)

여기에도 ‘slow’, ‘mellow’, ‘follow’와 같이, 같은 운율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 뚜렷이 들린다. 마지막 음 ‘-low’가 자그마치 10번이나 출현하는 것이다. 모두 바탕소리가 모음(母音) ‘O’인 것을 보면, 재치 있는 걸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가을에 너무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멜로디여서 여유롭고 풍요로운 ‘9월’(September)을 잘 나타내 주는 노래 같다. 더욱이 인생과 사랑의 라이프 서클을 잘 표현하고 있어 마치 기억을 되돌려주는 마술사의 소리처럼 들린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천재시인 ‘랭보’(J. Rimbaud·1854~1891)는 17살 어린 나이에 14행의 짧은 소네트 형식의 시 ‘모음’(Voyelles)을 파격적으로 발표한다.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발음 ‘모음’말이다. 제목도 특이한 이 시는 너무나 기발하고 심오하여 그 당시 주위 사람을 깜작 놀라게 한다.

A는 흑색, E는 백색, I는 적색, U는 초록색, O는 파란색, 모음이여!/ 나는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 A, 지독한 악취 주위에 윙윙거리는/ 번쩍거리는 파리들의 털투성이 검정 코르셋/ … / O, 기괴한 환성에 넘친 지상(至上)의 나팔/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神)의 눈 보랏빛 광선! (‘Voyelles’에서)

위와 같이 처음 2행은 다섯개 모음에 대한 색깔 적용과 새로운 모음세계, 즉 새로운 우주질서의 탄생에 대한 선언적 내용이다. 나머지 행은 모음세계를 이미지와 의미를 덧붙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음‘A’는 관능성과 탄생을, ‘E’는 지적인 정신성,‘I’는 생명의 생동성과 감정, ‘U’는 관조성, 마지막의 모음 ‘O’는 영혼과 종말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랭보’는 이 시에서 음(音)에 색을 입히는 작업, 즉 음향과 색과 향기 사이의 이론체계를 세우려했다. 그는 기존의 시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감각에 의한 리듬을 창조하는 시적 혁명을 시도하여 생생한 감각미를 성립시켰다.

여기서 잠깐 시의 마지막을 감상해 보자. 아이러니 하게도 모음 ‘O’를 묘사하는 구절 즉, ‘O, 기괴한 환성에 넘친 지상(至上)의 나팔’에서의 센스는 마치 조용필의 ‘헬로’곡에서와 같이 경쾌하게 느껴진다. 또한 모음 ‘O’의 설명 중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은 앞의‘Try to remember’곡에서 흐르는 가을의 묵직한 분위기의 감정에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마치 ‘영혼’에서 주고받는 소리의 반향처럼 환상적인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단풍이 짙게 물드는 만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태양이 이글대는 여름보다, 아니 찬바람 부는 냉랭한 겨울보다 ‘O’모음을 반복적으로 느껴보는 아름다운 이 계절에 운치 있는 가을 음악을 들으면서 사는 것도 진짜 값있는 삶이 아닐까?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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