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콘서트 유감
북 콘서트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1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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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북 콘서트에 참석했다. 하늬바람이 더위에 지친 마음을 여미게 하는 이달 첫 주, 이번에는 김훈 소설가가 콘서트를 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기는 시청 대강당 입구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다. 시간도 되기 전에 홀 로비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소설책을 받을 수 있는 비표를 받느라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선착순 배부라는 소설책 400권도 동이 나 버렸으니 작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던 콘서트였다.

전통음악으로 오프닝을 열고 소설 ‘흑산’의 한 대목을 읊는 시낭송가의 목소리는 행사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다. 울산시와 주최 측이 정성을 기울인 보람으로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콘서트 말미에 작가는 울산시민들에게 그렇게 화답했던 것 같다.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도시며 선사시대의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고. 그 옛날 고래를 포획했던 멋진 청년들이 오늘의 울산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줬다.

글과 책 언저리를 맴도는 내게 그날의 여운은 생각보다 길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작가의 실물을 대하고 그의 문학에 관한 철학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어 행복했던 하루였다. 반면 적잖은 아쉬움도 남았다. 일년 전이나 올해나 초청 작가만 다를 뿐 똑같은 형식의 북 콘서트였다.

위압감을 주는 높은 단상, 영혼 없는 축사만 하고 무리를 지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관리들, 꾸벅꾸벅 조는 청중들, 홀 여기저기서 행사를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들, 마치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는 듯한 참기 어려운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면 나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물론 일반 시민들의 독서의식을 높이고 귀한 세금으로 행사를 무사히 치르려는 관계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어쨌거나 작가와의 대화라기보다는 대중을 위한 북 콘서트였다는 콘셉트를 다시 한번 되새김할 수밖에 없었던 하루였다.

오래 전에 본 영화 ‘비포 선셋’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남자 주인공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다. 그는 9년 전 비엔나에서 하룻밤 인연을 맺었던 여자를 잊지 못해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을 들고 미국에서 프랑스로 저자 사인회를 하러 파리의 한 서점으로 날아온다. 여자는 우연히 소설을 읽고 사인회 포스터를 발견하고 남자를 만나러 서점으로 온다. 책 냄새 폴폴 풍기는 유서 깊은 고서점에서 독자들에게 둘러싸인 소설가, 초록색 창 너머로는 꿈에도 잊지 못했던 9년 전의 여자가 서 있는 장면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어도 감동을 줬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운명 같은 만남을 차분하게 녹여낸 자연스러움 덕택이랄까.

필자가 독자로 앉아 있던 시청대강당과 영화 속의 서점이 겹쳐졌다. 우리에게 작가를 스타가 아니라 독자와 대등한 관계로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없을까.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의 장점을 십분 살린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울산은 언덕에 자리잡아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도서관도 있잖은가. 별다른 형식이나 이벤트 없이 오로지 작가와 독자가 책으로 만나서 대화의 장을 여는 북 콘서트를 상상해본다.

그날 쥐꼬리만큼 주어진 작가와의 대화시간에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던 많은 청중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현상만 봐도 독자들은 이제 책만 구매하는 수동적인 소비층은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울산 시민들의 독서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콘서트가 끝나고 너나없이 두툼한 소설책 한권을 끼고 시청사를 나서는 모습을 보니 올 가을이 한결 풍요로워질 것 같다.

단언컨대 가을의 문턱에 서서 북 콘서트가 내게 사색거리를 던져 준 것은 틀림없다. 김훈 작가가 말한 야만성이란 말에 생각이 꽂혔으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야만성이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했던가. 편리주의를 앞세운 획일성도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할 야만적 행위의 하나가 아닐는지.

내년에는 공연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줄이더라도 작가와 소통을 나누고 시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책이 두런두런 말을 걸어올 것 같은 그런 북 콘서트가 열릴 것이라 기대해본다.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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