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스타일
울산스타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1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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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끈이 얇은 티셔츠나 탱크톱에 반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헐렁한 긴팔을 묶는다. 그리고 솔더백을 맨후 슬리퍼를 신고 ‘딱딱’ 소리를 내며 끌고 다닌다. 이러한 모습에 껌마저 ‘질겅질겅’ 씹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영락없는 불량소녀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LA스타일’이라고 부른다.

‘LA스타일’은 연중 구름 한 점 없이 27~28℃ 기온을 유지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만들어 냈다. LA는 사막이다. LA는 우리의 겨울철 ‘첫 눈 약속’처럼 ‘첫 비 약속’이 있을 정도로 비가 안온다. 그런데 아주 덥지도 않고 아주 춥지도 않다. 한 낮에 더우면 벗고, 저녁이 돼 추워지면 겉옷을 걸친다. ‘LA스타일’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70~80년대 우리나라에는 ‘LA스타일’이 들어와 귀공자들의 스타일이 됐다. 외국물을 먹은 그들은 케주얼 복장에 브이넥 같은 긴소매 겉옷을 어깨에 걸쳤다. 추위를 막기 보다는 멋을 부린 것이다. 거리에도 이들을 따라 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이 스타일이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유행을 따라하기 바빴다. 그러나 기후풍토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LA스타일’은 거추장스러움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겉멋을 부릴 한가로움이 우리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하나의 고착화된 정형이다. 문학작품에서는 개성 있는 형식이나 구성의 특질을 나타내고 미술·건축·음악 따위에서는 유파나 특유한 형식을 말한다.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표현하고 있지만 전체를 지향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파리지엔느, 뉴요커, 런던신사 등등은 패션계 아이콘이지만 이러한 하나의 스타일이 주는 의미는 스타일 이상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한류’라는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요계를 중심으로 한식,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는 ‘소녀시대’, ‘동방신기’와 같은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 한류를 따라하고 있다. 또 담백하고 영양만점인 우리의 식문화는 밀과 육식 위주의 서구의 식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동양사람은 왜소한데 우리는 왜 비만한가’라는 것을 연구하다 쌀과 채소위주 식단에 주목했다. 그들이 우리의 ‘비빔밥’에 열광하는 이유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삼성과 엘지의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아프리카에서는 한국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게 부의 척도로 알려져 있다. 중동에서는 우리나라의 중고 자동차가 ‘원더풀’이다. 쏘나타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한류’는 이미 세계의 스타일을 선도하는 문화코드가 됐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한류’를 수출함에 있어 ‘울산’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6·25 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국가를 선두에 서서 잘 살 수 있게 한 곳이 울산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선박을 건조하고, 세계 5위 규모의 자동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것에는 분명 ‘울산스타일’이 존재한다. 어깨 넘어 외국기술을 배워 왔던 ‘탐구정신’, 불철주야 생산성 향상에 매진한 ‘개미정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석유화학 공단의 ‘화려한 야경’들이 ‘울산스타일’의 근간을 이뤄왔다. 현대, SK 등 대기업 마크를 붙인 유니폼이 ‘울산스타일’이란 것이다.

이 ‘울산스타일’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변화해야 한다. 울산스타일의 정신은 유지하돼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열심히 일한 이들이 격에 맞게 즐길줄도 알아야 한다. 지난달 기장에 ‘신세계 아웃렛’이 문을 열었다. 아웃렛이 문을 열자 울산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찾았다. 근로자 유니폼을 입고 온 아빠와 ‘LA스타일’의 딸이 조합된 가족들이 유독 많았다. 더 이상 ‘유니폼’이 ‘울산스타일’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정인준 취재2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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