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내 것인데, 오페라는 누구 것인가?
뮤지컬은 내 것인데, 오페라는 누구 것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9.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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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향가 처용가(處容歌)는 내것과 네것의 다툼에서 생겨났다. 이 다툼에서 처용은 ‘관용’을 선택했다. 지금 울산에서 다시 그와 비슷한 다툼이 있는데, 어떤 해결수단을 택할지 궁금하다.

지금의 다툼은 울산시가 만든 뮤지컬 처용과 국립오페라단이 만든 오페라 처용 가운데 어느 것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박맹우 시장은 지난주 국립오페라단을 울산에 초청한데 이어 매년 불러들일 궁리를 하고 있다. 반면에 울산이 만든 뮤지컬 처용을 10년간 묵힌데 이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언급이 없다.

뮤지컬 처용을 외면하고, 도시의 중요 문화콘텐츠를 사장(死藏)시키는데 대해 뭐라 해명이 있음직도 한데 아직 없다.

뮤지컬 처용을 이 시점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 작품에는 몇 가지 기념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처용은 지역에서 뮤지컬이란 장르를 개척한 첫 작품이었다. 또 한 지역이 국민적 이해가 높은 소재를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킨 시범사례였다.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문화융성’ 가치를 일찌감치 선도했다.

아울러 처용설화란 문화원형을 이 시대에 맞는 그릇에 담아냈다. 이 문화원형은 신라시대에는 노래와 설화 형식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악귀를 쫓는 제의로, 조선시대에는 궁중무용으로 변천됐다. 긴 세월 변천해온 이 문화원형을, 그것이 탄생된 울산에서 뮤지컬이란 현대적 예술로 담아낸 것이었다.

그러기에 극작의 교과서적 인물인 차범석씨가 대본을 쓰고, 국내에서 몇 째 가라면 서러워 할 임영웅씨가 연출을 맡아 혼신을 불어넣었다. 5억원을 들여 제작한 작품으로는 평판도 좋았고, 전국 순회공연도 기약했었다.

이런 작품을 탄생시켰으면 계속 수정보완해야 함에도 창고에 가둬버렸다. 그리고 오페라 ‘박상진’과 뮤지컬 ‘태화강’을 만드는데 눈을 돌렸다.

뮤지컬 처용이 왜 창고에 들어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그 추측 가운데 하나는 전·현직 시장의 기질적 차이다. 뮤지컬 처용은 심완구 시장때 만들어졌다. 심 시장은 해안에 가까운 곳에서 성장해 해양성 기질이 강한 반면, 박 시장은 내륙 강변쪽에 성장해 내륙성 기질이 강하기 때문이란 풀이가 있다. 뮤지컬 처용은 해양성을 대변하고, 오페라 박상진은 내륙성을 대변한다고 본 것이다. 기질적 선호도에 따라 공연대상이 가려졌다는 것인데, 신빙성은 낮아 보인다.

또 종교적 이유도 든다. 뮤지컬 처용이 공연될 즈음 특정 종교인들이 처용이 가진 내용과 이미지가 우상이나 미신에 가깝다고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박 시장은 처용암에서 제의를 지낼 때도 참석하지 않는다.

또 짚이는 것은 뮤지컬 처용에 참가한 연극단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고용과 처우문제를 들고 나와 장기간 쟁의를 벌였던 점이다. 행정관서에서 노조를 설립하고 사용자인 시장을 압박한 괘씸죄를 저지른 셈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살펴봐도 뮤지컬 처용이 10년이나 창고살이를 하고 관용의 혜택을 받지 못할 사연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이유가 있을 성싶다.

이런 흐름 속에 뮤지컬 처용때 쓴 의상들은 좀 먹고 대본은 바래지고 있다. 뮤지컬 처용과 오페라 처용은 각각 2시간 가량 공연했다. 어느 것이 더 재미있고 영감을 줬느냐는 절대적 평가는 어렵다. 다만 중간 휴식 뒤 빈자리를 셈해 볼 수 있다. 오페라 처용 공연때 빈자리가 더 많았다.

어떻든 국립오페라단의 해체 문제가 중앙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와중에 울산까지 와서 공연한데 고맙게 여긴다. 그러나 내 떡과 네 떡은 구별하자. 울산에서 빚은 떡을 잘 숙성시키고 포장했다면, 서울 떡이 커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서울떡도 한번쯤 맛보면서 울산떡이 명품이란 것을 실감하는 것도 좋다.

<김한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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