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식 논설위원이 쓰는 ‘이념 갈등의 참상’
“상황판단 미숙 토벌실패로 돌아가”
▨ 정종식 논설위원이 쓰는 ‘이념 갈등의 참상’
“상황판단 미숙 토벌실패로 돌아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6.19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패잔병·토착 빨치산 부대 형성 교장 딸 납치
유인 작전에 속아 계곡에 갇혀 ‘진퇴양난’
▲ 공비 23명이 매복했다가 경찰을 습격한 지점(울주군 범서면(당시)반용 마을).

 

6.25 전쟁으로 남하했다가 낙오한 인민군 패잔병과 토착 빨치산이 혼합부대를 형성, 막강한 화력으로 울산군내 경찰관서를 비롯한 관공서 습격, 살인 방화를 일삼고 있었다. 51년 8월 6일 오후 11시 께. 울산군 범서면 서사리 소재 서사국민(초등)학교 문(文)모 교장의 딸이 공비들에게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동 주둔 사찰유격대장 김(金)홍조 경사는 강(姜)난수, 조(趙)태복 형사 등 9명에게 서사리에 있는 양조장을 중심으로 잠복근무에 들어 가도록 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경찰이 잠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유포시켰다. 공비들이 경찰 잠복근무 지역에 기습하도록 유인 할 계산이었다. 잠복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공비들의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범서 지서주임 최(崔)정락 경사는 8월13일 오전 11시께 평소대로 작전회의를 가졌다.

작전내용은 물론 서사초등학교 교장 딸 납치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박(朴)인옥씨는 경찰측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박씨는 극우익 인사로서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해 전투경찰대장을 맡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지서 회의에 항상 참석했다. 당시 울산지구 공비들은 두가지 루트를 따라 움직였다. 신불산 681 고지를 기점으로 작전을 나갈 때는 연화산을 거쳐 옥려봉에 도달한 뒤 서사 뒷산을 넘어 가대산, 동대산에 이른다.

한편 작전을 마치고 귀환할 때는 동대산에서 출발, 치술령을 넘고 국수봉을 거쳐 연화산, 신불산 코스를 밟는다.

따라서 이번 납치사건을 저지른 공비들이 ‘나오는 중이냐, 들어 가는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매복위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했다.

최주임을 비롯한 경찰측은 나오는 중이라고 판단해서 서사에 매복할 것을 주장했다. 한참 격론 끝에 서사에 9시까지 잠복해 있다가 별다른 기미가 없으면 10시부터 범서면 반용마을에서 매복하기로 정하고 박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박씨는 공비들로부터 궐석 인민재판에서 9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자택에 머물 수가 없었다. 공비들의 보복을 피해 뒷집에 작은 방을 얻어 은신하고 있었다.

8월 13일 오후 8시30분 께. 추석을 이틀 앞둔 때여서 달이 몹시 밝았고 바람 한 점 없었다. 야간에는 항상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박씨 귀에 “아야!” 하는 얕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여긴 박씨가 살그머니 밖으로 나가 바로 앞에 있는 박씨 집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랐다. 2개의 시커먼 물체가 박씨 집 안으로 꿈틀거리며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찰이 매복하러 들어 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이면 똑바로 걸어 들어 올 일이지 숨어서 길 필요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쭈빗 섰다.

공비가 침입해 들어가는 모습을 달빛속에서 확연하게 본 셈이었다. 박씨는 뒷담을 넘어 서사에 주둔하고 있던 경찰 사찰대로 달려 갔다. 박씨의 설명을 듣고 사찰대는 출동을 서둘렀다.

▲ 김홍조 경사와 고생을 같이한 동료들(두동지서 앞에서)

한편 이날 출몰한 공비 27명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

4명이 마을에서 집회를 갖고 나머지 23명은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인 갈매정 부근 산기슭에 매복하기로 정해 둔 상태였다.

집회 소식을 들으면 경찰이 출동할 것이고 이 때를 역이용 해 반용마을로 끌어 들이는 과정에서 공격을 가할 심산이었다. 이런 계획을 전혀 모른 채 박인옥씨를 선두로 김홍조 경사, 강난수 형사 등이 2~3m 간격으로 뒤 따랐다. 개울을 따라 선두에서 올라 오던 박씨가 갈매정 입구 산기슭에 닿았을 때 담배 냄새를 감지했다. 오랜 전투 경험을 통해 20~20 미터 전방에서 나는 담배냄새 정도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박씨였다. 특히 공비들은 비상식량으로 마늘을 많이 먹기 때문에 냄새를 맡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박씨가 잠깐 멈칫하는 순간, 상류에 있는 반용부락에서 ‘인민 공화국 만세’ 소리가 들려 왔다. 집회가 끝나 간다는 신호였다.

집회가 끝나 버리면 공비들이 마을을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 마음이 조급해진 박씨가 “구보!” 라고 소리쳤다. 그순간 우측 산기슭에서 콩볶는 듯한 총성이 산을 뒤 흔들었다. 낙오된 인민군이 섞인 탓인지 따발총 소리와 기관단총 소리가 유난스러웠다.

기습을 당한 곳이 개울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숨을 곳도 없었다. 개울둑이나 약간 패인 웅덩이에 몸을 엎드린 채 응사했지만 어두운 밤이라 적이 몇 명인지 조차 파악 할 수 없었다. 뿔뿔이 흩어진 경찰대는 사방으로 뛰었다. 김홍조 경사와 조태복 형사는 웅덩이에 엎드린 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총알이 머리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김경사가 “조금 있다가 비행기 오는 소리가 나거든 야전잠바를 벗어 던지겠다. 그때 필사적으로 뛰라”고 말했다. 당시는 전시였기 때문에 비행기가 항상 날아 다녔고 토벌전투때는 폭격기의 지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잠시 후 비행기의 굉음이 머리위를 스치자 “왔다!” 소리를 지르며 김경사가 야전점프를 반대방향으로 던졌다. 그쪽으로 총알이 쏟아졌다. 그 순간 김(金), 조(趙) 두 사람은 건너편 산 쪽으로 뛰어 들었다. 일행이 어떻게 됐는지 파악도 못하고 산속에서 밤을 새운 뒤 새벽녘에 두동지서에 도착했다. 일행을 점검해 본 결과 강난수 형사와 박삼철 형사가 보이지 않았다.

총알이 비오듯 퍼 부었는데도 나머지는 모두 무사했다. 일행은 두 형사의 수색에 나섰다. 피습지점 부근에서 복부에 관통상을 입은 강(姜)형사가 중태에 빠져 있었다. 경찰서장 전용 쓰리쿼터를 이용, 울산읍 교동 소재 양사국민학교에 있던 육군병원으로 긴급 후송해 목숨을 건졌다. 강(姜)형사가 발견된 지점에서 하류로 약 5백m 내려온 숲 속에서 박형사를 발견햇다.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역시 교동에 있던 육군병원으로 후송해 목숨을 건졌다.

14일 오후 응원차 나왔던 수사주임 강(姜)두화씨와 金경사는 이날의 상황을 서장 조(趙)정호에게 보고하러 들어갔다. 공비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관단총을 소지한 인민군과의 혼합부대인 것 같다고 보고하자 “네가 기관단총을 어떻게 알아? 거지같은 XX들” 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나온 부하에게 욕설을 해 대자 김경사가 권총을 뽑아 들었다. “뭐라고 이 자식이 말 다 했어!” 라고 소리치며 김경사가 벌떡 일어섰다. 옆에 있던 강(姜)주임이 권총을 뺏고 말렸다. 나중에 조 서장은 金경사를 조용히 불러 사과의 악수를 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