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끝 ‘우수아이아’
지구의 끝 ‘우수아이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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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아이아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서 가장 큰 섬에 있다. 세계최남단의 항구도시이며 비글해협(1832년 찰스 로버트 다윈이 비글호로 통과한 데에서 명명)과 닿아있다. 사진은 미들즈 피크 트레킹 중 발견한 이끼군락.

오전 9시 푼타아레나스를 출발한 2층 버스는 오후 2시가 돼서야 우리를 마젤란 해협에 내려놨다. 마젤란 해협은 듣던 대로 물살이 거세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양육선에 걸어서 올라갔고 우리가 타고 온 2층 버스도 배에 실렸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우리가 도착한 섬은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 마치 육지 같았다.

다시 5시간을 더 달려서야 지구 최남단의 도시 우수아이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6시였다. 짐을 풀고 저녁 8시에 대게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는 ‘티아 엘비라’에 들어섰다. 대게, 대구 스테이크, 샐러드를 주문했고 이어서 백포도주(화이트 와인)가 들어왔다. 원래 고기에는 적포도주(레드 와인)가 제격인데 필자가 백포도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했다고 했다.

일행 중 한명의 건배 제의로 우리들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백포도주잔을 높이 치켜세웠다. 건배제의를 한 사람은 73세로 이번 안데스 산맥 원정대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그 나이에 49일간의 기나긴 원정대에 지원한 걸 보면 용기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과연 필자가 그 나이가 됐을 때 그처럼 기나긴 산악 트레킹에 도전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필자는 이번 트레킹 내내 그에게서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멋있고 아름다운지를 언뜻 언뜻 보게 됐다. 길 떠나면 모두가 스승이라더니 필자는 이번 트레킹 중 세 사람의 스승을 만나게 돼 가슴 뿌듯했다.

우수아이아에서의 첫 번째 트레킹은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탐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일기가 불순해 비극해협을 건너 펭귄섬으로 가는 계획은 불가능해 졌으나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비글 해협을 가가이서 탐험한다는 것은 필자에게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비글’이라는 이름도 이 해협을 통과한 선박의 선장 이름을 딴 것이라고 했다. 또 그 배에는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 해협을 지난 그는 고곡에 돌아가 ‘종의 기원’을 발표해 그 당시 과학계와 종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신에게 도전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는 파문이 종교게와 과학계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자 다윈 같은 종교적 이단자를 자기 배에 태우고 다니며 ‘종의 기원’을 쓰게 했다는 자책감에 못 이겨 비글 선장은 당시 기독교계와 신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택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동료에게서 듣고 필자는 비글 해협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지금 비글 선장과 다윈이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난다면 서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서 해협을 바라봤다. 오후에는 지구 최남단 표지판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지구 최남단- 지구의 끝이다’란 표지판 앞에 서 있으니 ‘끝은 정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라고 읊은 어느 시인의 글귀가 귓가를 맴돌았다.

우수아이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틸 빙하 트레킹이 원래 계획이었으나 관광 코스라 트레킹 시간이 짧다고 해 우리들은 미들즈 피크(1천200m) 트레킹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마침 내린 비로 산 정상이 흰 눈에 덮여있어 일행은 그쪽으로 트레킹하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산행이 시작 됐다. 산악 가이드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가는 바람에 가이드 회사 사장이 직접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섰다. 렝가스가 꽉 들어찬 숲은 하늘을 보기가 힘들었고 곳곳에 고사목이 널부러져 있었다. 깨끗한 계곡물과 습지가 심심찮게 나타났다. 2시간을 숲 향기속에서 트레킹 한 후에야 이끼지대가 나타났다. 정말 다양한 이끼군락이 수없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끼 위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점점이 꽃을 피우고 있어 정말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히말라야와 알프스에서도 이끼군락을 봤지만 이곳 우수아이아에서 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끼군락은 본적이 없었다. 정말 이끼 천국이었다.

3시간의 산행 끝에 오늘의 목표지점인 미들즈 피크에 도착했다. 산 정상은 예상대로 화산석과 기암 괴석으로 그 풍광이 절묘했고 저 멀리 우수아이아시 전경과 비글해협, 수 많은 섬들이 서로 얽혀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지구끝에서의 멋진 산행이었고 감회가 남다른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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