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울산보배는 ‘내 삶의 보배’
고진감래 울산보배는 ‘내 삶의 보배’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3.08.2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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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곤 미국수출 배 재배농민
냉해 가뭄 역경 클수록 당도 더해
퇴직후 심은 묘목 이젠 700그루
네식구 생계 지켜준 배농사는 천직
울주 14t 수출 연말까지 700t 계획
▲ 울주군 청량면 용암리 신촌마을에서 수출 배 재배를 하고있는 김경곤씨.

홍명고등학교가 건너다보이는 울주군 청량면 용암리 신촌마을(온산로 3492-5번지) 일대, 나지막한 야산 허리를 감싸고 조성된 배 과수원의 의미가 주인 김경곤(59)씨에겐 남다르게 다가온다. 30년 가까이 아내와 딸 아들 네 식구의 생계와 자식농사를 지탱해준 고마운 삶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1만9천80㎡(약 6천평) 남짓한 과수원에는 중생종 배 ‘신고’가 9∼10월의 수확을 기다리며 8월 뙤약볕 아래 영글어가고 있다. 비료공장 퇴직에 때맞춰 심은 30년생 배나무는 그 수가 넉넉잡아 700그루는 된다.

과수원 주인 김씨에게도 올여름 가뭄은 무척이나 길었다. 물(관정수) 대기도 헉헉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과수농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수출할 배를 재배한다는 자부심 하나가 온갖 역경을 다 이겨내게 했다. 대미수출 배 재배농가는 울주군 전체에 120군데가 있고 김씨가 터를 잡은 청량면 용암리 일대에만 27군데나 된다.

▲ 지난 21일 오후 울산원예농협 율리사업소에서 열린 올해 ‘울산 보배’ 대미 첫 수출 환송 행사 장면.

울산의 명품이자 울주군의 특산물인 ‘울산보배’의 올해 대미 수출 첫 환송행사는 지난 21일 오후에 열렸다. 청량면 원예농협 율리사업소에서 가진 이날 행사에는 신장열 군수와 김철준 울산원예농협 조합장, 배 재배농가 대표도 참석해 미국 LA로 떠날 울산보배의 장도를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선적된 배는 조생종인 ‘원황’ 약 14t. 시가로 따져 4천만원을 호가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그토록 길었던 여름가뭄이 예년보다 당도는 높게 했지만 굵기는 기대에 못 미치게 했다. 올해는 작년에 그토록 기승을 부렸던 ‘흑성병’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올봄에 냉해는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700t, 27억 원어치를 수출한다는 게 울주군의 소망이다. 대미 수출 12년차인 올해는 수출지역도 LA뿐 아니라 시카고, 뉴욕 등 미국 전 지역으로 넓혀 나간다는 기대가 신바람을 일으킨다.

▲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재배기간 중 대미수출용 배에 씌워진 종이봉지. ‘FOR USA’ 글자가 선명하다.

김경곤씨의 ‘대미수출 배 재배지’를 찾은 것은 26일 오후. 김씨의 표정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올봄의 저온피해(냉해)로 꽃가루받이(수분)가 힘들다 보니 주렁주렁 모양새를 뽐내고 있어야 할 과실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을 뿐이어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보다도 먼지 피해가 엄청났지요.” 그는 공사장, 그것도 한꺼번에 세 군데에서 몰아닥친 공사장 분진 피해를 이야기하며 분을 삼키지 못하는 눈치다. 거남∼신천 도로 공사, 덕하 화물터미널 공사에다 신항만 배후도로 공사까지 겹치다 보니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온피해를 확인한 울주군이 농약대금으로 얼마간 보조라도 해 준 것은 그래도 고마웠다, 하지만 공사장 분진 피해는 아무리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일 수밖에 없다.

김씨는 희망사항이 하나 더 있다. “우리 마을(수출 배 재배단지)에 저온창고 하나쯤 지어 주었으면 참 좋을 건데.” 배를 수확하고 나면 매번 6㎞나 떨어진 율리사업소까지 가는 불편이 줄어드는 동시에 상품가치도 더 높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인 것이다.

울주군 농업정책과에 따르면, 지정 농가에서 수확한 배들은 모두 율리사업소에서 선별작업을 거친다. 그 결과 좋은 점수를 받으면 대미 수출 길에 오르고 ‘등외품’ 판정을 받으면 울산원예농협이 운영하는 웅촌면 대곡리의 ‘배즙 공장’으로 직행한다.

김씨가 늘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 울산원예농협의 김철준 조합장이다. 서너 해 전 ‘선진지 견학’ 이름으로 일본 오사카∼삿포로 일대의 배 재배 농가를 여드레에 걸쳐 둘러보고 새로운 재배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도 김 조합장의 배려 덕분이라고 했다. 매일매일 울산기상대로부터 날씨 정보를 제공받게 길을 터 준 이도 바로 그였다. “자상한 배려 덕분에 식었던 용기와 희망이 다시 샘솟곤 합니다.”

김씨는 그런저런 덕분으로 연간 5천만원 벌이는 챙길 수 있다. 봉지값, 농약대금 등 농사자재 값을 제하고 나도 그만한 수입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과수원 규모가 3만3천㎡(1만평)이 넘는 농가 네 곳은 연간 1억 원 대의 수입을 올린다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두 내와가 안분 자족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87가구, 150세대가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용암리엔 새로운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도 현지를 방문, 독려한 적이 있는 S-OIL의 지하 저유탱크 확장 사업 때문에 이 마을 일대가 사업 대상지에 포함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원래 이 마을 일대는 S-OIL의 저유시설이 들어설 참이었지만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었다.

김씨는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 믿고 싶다. 저온피해든 흑성병이든 분진피해든 힘없는 농민들로서는 능히 물리칠 수 없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일 테니까.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S-OIL의 지하 저유탱크 확장이라는 국가적 사업이 새로운 희망의 모습으로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김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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