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의 ‘사택’과 짝꿍
꼬마의 ‘사택’과 짝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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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세찬 여름소낙비로 무더운 더위가 수그러들었다. 높은 하늘을 쳐다보면 창공에 흰 구름이 둥둥 떠내려간다. 아니 이렇게 좋은 날씨라면 어느 누구도 좋은 삶이 될듯한데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울산대 내에 ‘사택’이 있었다. 우수한 교수진들을 위한 개교 당시의 특별한 배려 차원에서 지어진 것이다. 이제는 그들 나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곳에 둥지를 틀어 옹기종기 살면서 아이들은 자랐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돼 독립한 의미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즐거웠고 정이 푹 들은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떠나고 없는 자리에, 학생들을 위한 큰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무엇보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의 추억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택 ‘이라는 현상을 보니, 프랑스의 천재 철학자 베르그송(H. Bergson·1859~1941)의 ‘현재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라는 의식 속에는 과거와 미래 모두 포함돼 있다. 모든 것이 변하는 현재의 시간이야말로 우주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 주장했다. 의식에 예고도 없이 비(非)자발적으로 진입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통 때는 일어나지 않는 유년기의 추억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진대 필자의 어릴 때 살던 ‘사택’에서의 기억이 다음과 같이 무의식적으로 살아난다.

대구는 일찍이 일제 강점기부터 방직산업이 어느 도시보다 발전되어 있었다. 몇 개의 방직회사가 모여 있는 동네에는 제각기 독특한 ‘사택’이 있었다. 필자가 살던 곳도 그 중 하나다.

꼬마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제법 멀었던 것 같다. 사택 밖으로 나와 ‘긴 담장’을 옆으로 둑을 거쳐 ‘굴다리’를 지나 걸어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옆에는 또 꼬마가 다녔던 갈색 벽돌의 ‘칠성병원’도 눈에 아른거린다. 조금 더 가면 전매청. 그곳에서 뿜어 나오는 ‘하얀 김’을 쳐다보면서 학교 정문에 도착한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면 이 꼬마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무엇을 하면서 놀 것인지 궁리한다.

꼬마가 살고 있던 ‘사택’은, 굉장히 넓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가로 세로 직경 십리 정도까지 상상했으니 말이다. 또 그땐 친구들이 유난히 ‘야구’를 좋아했는데 특별히 운동장은 필요 없다. 사택 한가운데가 그들의 야구장이고 놀이터가 되었으니까.

그 안에는 호기심 나는 ‘구멍가게’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영철이 할아버지 가게. 그 할아버지는 귀 뒤쪽에 큰 혹이 달려있어 ‘혹부리 영감’이라고 불렸다. 또 하나는 꼬마가 단골로 다니던 구멍가게. 손에 쥔 돈은 없었지만 고마들은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오늘은 또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나 하고 말이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늪지’도 보인다. 웬 잠자리가 그렇게 많고 큰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놈들은 ‘왕잠자리’였던 거다. 아무것이나 막대기에 달고 휘두르면 그 놈은 확 달라붙는데 곤충채집하는 도구로는 최고였다.

사택이라는 말이 나오면 무엇보다 초등학교의 ‘짝꿍’이 생각난다. 산수책 한 권을 둘이 같이 보면서 공부했으니 더욱 재미났다. 어느 날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꼭 우리 교회에 와줘!”라고 졸라대는 짝꿍의 말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 소리에 꼬마의 마음은 더욱 두근두근한다. 게다가 짝꿍의 엄마가 말하는 상냥한 ‘서울 말씨’를 그는 결코 잊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사투리를 쓰는 꼬마에게는 늘 신기하게 느껴져 그녀의 집 앞으로 지나는 것을 마냥 재미있어 한 것 같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하면서 노는지, 어떻게 생활해 가는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아담한 시골집까지도 눈에 선하다. 그 대문 천장 모서리를 보면 ‘제비들’이 들락거린다. 둥지안의 새끼들이 조잘대고 있는 모습은 참 정겨운 느낌이다. 게다가 대문 밖에 있는 갖가지 채소밭이 뜨거운 햇살에 쪼이고 있다.

구석진 곳에는 ‘볏짚’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좀 시끌시끌한 ‘돼지우리’가 있다. 한때는 어미돼지가 새끼 12마리까지 낳아 꼬마가 놀란 적이 있다. 토실토실하게 생긴 놈들이 그냥 어미젖을 이열횡대로 다닥다닥 붙어 빨아댄다. 모습만 보아도 꼬마의 마음은 마냥 풍성한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M.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유년기처럼, 잠시 필자의 유년기로 돌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본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 누구든 각자의 잃어버린 어릴 때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동시에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잊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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