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배우는 시대
용서를 배우는 시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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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양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많다. 교육방송의 ‘달라졌어요’와 ‘용서’도 그런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제목과 같이 ‘달라졌어요’는 상담과 치료를 통해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용서’는 불화를 겪는 두 사람이 오지로 떠나 함께 어려움을 겪으면서 화해로 끝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달라지는 과정의 대부분은 과외받기다. 부모는 진정한 어른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사장은 사랑받는 권위를, 부장은 부드러운 어울림을 배우고, 약사는 지루하지 않는 사명감을 배우며, 학생은 행복한 공부의 의무를, 선생은 아름다운 스승의 역할을 배운다.

홀로 끙끙거리며 어려움을 해결하던 시대는 이미 갔을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유치원부터 과외를 받고, 학원이 익숙한 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자기주도학습을 말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행학습, 학원교습, 과외 따위의 사교육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남보다 빨리 먼저 하고자 하는, 줄을 세우고 경쟁을 부추기던 마음이 서로의 마음을 꽁꽁 닫게 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워야만 회복되는 관계라서 씁쓸하기는 하지만 상처를 드러내 치료를 받는 과정을 보노라면 남의 일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눈물범벅인 채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럴 때 마음의 눈은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다. 다른 이를 둘 마음의 자리가 없다. 드라마를 통해 현재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최면을 통해 깊숙이 가라앉았던 감정을 끄집어내 푼다. 간단한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그림에 숨겨진 마음을 설명하는 전문가의 일갈에 당황하기도 한다.

여러 차례 객관적인 심리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비로소 제 마음을 향했던 눈길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달라진 출연자의 얼굴은 한결 평안하다. 나를 알아달라고 읍소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편이 내 마음을 잘 보이는 길이라는 걸 깨닫는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서운한 말만을 일삼았던 남편의 행동이, 실은 남편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싫어해서 생긴 방어기제였다는 걸 깨닫는다. 남편을 이해한 아내는 사랑을 듬뿍 주고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내에게 마음을 연다. 하나가 달라지면 둘이, 모두가 달라질 수 있다는 달달한 결말로 끝이 난다.

‘용서’라는 프로그램은 불화를 겪는 두 사람이 외국의 오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도중, 쉬는 짬짬이 둘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해묵은 노여움은 금세 풀리지 않지만 녹는 점은 불현듯 찾아온다. 척박한 환경에도 순박하게 정을 나누면서 사는 마을사람들은 좋은 본보기다. 둘이 정을 나눴던 때를 떠올리고 마침내 화해를 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지만 둘은 마음을 터놓고 따로 올랐던 길을 함께 내려온다.

용서를 보면서 이창동의 소설 ‘밀양’이 떠올랐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러 갔는데 도리어 그는 이미 용서받았노라 태연히 말한다. 용서를 하는 자와 용서를 받는 자간의 불통으로 주인공은 괴로워했다. 누가 누구를 감히 용서할 수 있는가의 거대 화두는 제치고라도 불통의 어려움은 시대를 불문하고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소통문제는 가족을 넘어 학교, 사회 전반으로 넓어지는 추세다. 가족 관계가 단출해지고 예전과는 달리 경험치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한번 어긋난 마음은 합쳐질 줄 모르고 반대편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멀어진다. 어그러진 관계에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달라지는 것이 1인칭이라면 용서하는 것은 2인칭시점인 것 같다. 달라지는 것은 개인의 일이요, 용서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익히기보단 누군가의 지도를 받고, 교정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달라진 내가 많아질 때 용서받고, 용서하는 우리가 많아질 것이다.

내게 향했던 눈길을 다른 이에게 돌릴 때 용서는 저절로 따라오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나아가 더이상 달라질 나도, 용서를 받을 우리도 없어질 시대를 기다려본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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