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즈음엔 노래가 애인이자 위안”
“60즈음엔 노래가 애인이자 위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2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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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준 태화강 시니어 합창단원장
▲ 지난 19일 오후 울산문화예술회관 다목적실에서 연습중인 태화강 시니어 합창단원들. 김미선 기자

태화강 합창단에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조건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가입 자격조건이 50세 이상이다. 남자 단원 중 최고령자가 75세로 연령층이 높다. 유별난 점도 있다. 합창 행사 말미에 꼭 독특한 독백 가사를 하나 넣는다. ‘내 나이 오십 즈음/ 난 달리고 있었어. 목적지도 모른 채/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채/ 어디서 멈춰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난 달리고 있었어’.

이 독백 가사는 태화강 합창단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40~50대 시절, 삶에 바빠 노래 한 소절 마음껏 부를 여유가 없었던 남녀 55명이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 부른다. 특이한점도 있다. 독백 말미에 꼭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말을 넣는다는 것이다. 왜 이 가사를 넣느냐고 묻자 송병준(62) 합창단원장은 “사는 게 항상 이별을 연습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태화강 합창단은 울산 산업화 과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판박이다. 전직 기업체 간부, 의사, 교수, 전업 주부, 음악가 등 울산을 한 덩어리로 묶어 놓은 커다란 레코드판이다.

태화강 합창단은 오는 10월 17일 부산 국제합창제에 참가한다.

왜 단원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제한했나.

“울산에 있는 모든 합창단 가입 조건 가운데 하나가 50세 이하다. 그러면 50세 이상은 노래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빈틈을 메우기 위해 50세 이상을 자격조건으로 했다.”

언제 어떻게 창단했나.

“2011년 10월에 창단 했다. 창단 취지는 앞에서 말 한대로다. 강혜순 시의원과 허영자씨가 창단에 큰 도움을 줬다.”

남성 단원들의 연령 분포는.

“58세가 가장 어리다. 최고령자(김동욱)는 75세다. 60대가 가장 많다. 나는 현대중공업에 재직했다. 이은우 씨는 지금도 울산과학대에 출강 중이다. 음대를 졸업한 뒤 음악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시작한 사람도 있다.”

▲ 태화강 시니어 합창단의 송병준 합창단원장.
늦게 음악을 시작한 편이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듯이 그 동안 생활에 쫓겨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대부분 젊어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나이 들어 시간 여유가 생기자 못했던 걸 해 보는 것이다. 시간 여유가 생기자 이번에는 돈이 여유가 없어져 문제다.”

합창과 인생,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합창은 여러가지 소리를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러 경험을 통해 하나의 인생관을 확립한다. 반면, 합창은 못 했던 것을 다시 할 수 있지만 한번 흘러간 인생은 다시 할 수 없다는 게 다른 점이다.”

합창행사 말미에 꼭 ‘서른 즈음에’란 독백 가사를 넣는 이유는.

“단원 전체 가슴에 와 닿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삼십대가 황금기 아닌가. 오십대가 되면 목적지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도 모른 채 거저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우리 세대다. 그래서 그 가사를 모두들 좋아한다.”

합창을 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하는데 단원들이 모두 그 시간을 기다린다. 합창은 노래 때문에 모인 것이니까 한 가지 목적에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다. 나름 개성있는 사람들이 모여 융화하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가끔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도 있나.

“물론이다.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데 왜 그런 게 없겠나. 젊었을 때 한 가닥 했던 사람들도 많다. 지난해 위기를 한번 겪었다. 그 때도 강혜순 의원이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도 일년에 한번 정기 연주회는 적으니 2~3번 하잔다.”

젊은이들보다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리듬 감각이 떨어진다. 공연 마지막에 ‘카레’곡을 합창하는데 템포가 빨라 단원들이 애를 먹는다. 템포가 빠른 곡은 따라하기가 가장 어렵다. 세월은 못 속인다.”

합창단 대표를 굳이 ‘단장’ 대신 ‘단원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가.

“단장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합창단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원장은 이름 그대로 단원들을 대표할 뿐이다. 순수회원이란 의미다. 단장이 아직 없다. 몇 번 시도해 봤으나 실패했다.”

합창단에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재정적 문제다. 연습 중간 단원들에게 간단한 간식도 제공해야 한다. 지휘자, 반주자, 트레이너에게 작지만 수고료도 지불해야 한다. 행사 때 마다 대관비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지난해 2천500여만원이 나갔다. 우리에겐 큰 부담이다. 여성지원자는 많은데 상대적으로 남성단원 지원자가 적은 것도 문제다. 전체 단원 55명 가운데 17명만 남성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다. 일종의 여초(女超) 현상인 셈이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여성들은 50세 이상이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이다. 가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시기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 반대다. 시간적 여유는 생겼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점점 소외돼 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는 때다. 그러니 무슨 노래를 하고 싶겠나. 그러나 합창단은 용기와 열정만 있으면 된다.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향후 계획은.

“오는 10월 17일 부산 국제 합창제에 참가한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데 올해 시니어부가 처음 생겼다. 모두 6팀이 참가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남녀 혼성팀은 울산이 유일하다.”

글=정종식·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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