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로 전하는 실패학
암묵지로 전하는 실패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0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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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우 시장이 직원들에게 ‘예스맨이 되지 말아 달라’는 뜻을 종종 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키는 것만 잘하고 시장 눈치를 보고 구미에 맞는 일만 해내는 톱다운을 버리고 민주적인 협의로 결정하라는 충정으로 이해했다.

박 시장이 시정을 맡은 지 12년, 울산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시장이 겸손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견지한 점이 회자됐고 가장 민감한 인사에서 잡음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도 자랑할 일이다. 몇 년 전에 지역의 모 실세가 청탁성 인사 압력을 넣었지만 거절하고 응하지 않았다. 육두문자가 오가도 끝내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그만큼 소신있는 인사를 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천하의 달인도 사람인 이상 오류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행정은 달인 한사람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게 효율적이란 지적이 있었다.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나 지역 언론의 지적에도 적절한 반응을 보이거나 수정 보완하기 보다 어른의 심기에 더 신경 쓰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더러 나왔다.

말이 쉬워 삼세번이고 12년이지 사실 광역시장 3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시민들의 선택을 세번 연속해서 받은 것 자체가 성공이다. 관운도 능력도 다 그럴만 했다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에서 드러나는 각종 부패, 중도하차 사례와 많은 의혹들에 비하면 자기 관리도 괜찮았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이나 선출직 중에서 가장 편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더 이상 나설 수 없으니 선거라는 중압감에 시달릴 이유도 없다. 부담없이 홀가분하게 선거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이제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를 말할 차례다. 오래 전의 스크랩을 찾았다.

똑같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도 음식점마다 맛이 다르다. 며느리에게도 안가르쳐 주는 주인의 손맛에 따라 그렇다고 한다. 매뉴얼처럼 규칙적인 레시피가 아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 관점, 신념 등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지식을 암묵지라고 한다. 개인의 경험치가 쌓인 것이다.

이제 지방자치를 떠나야 하는 분에게 자신의 실패학을 남겨 달라고 권하고 싶다. 암묵지를 통해 그동안의 실패를 고백하면 어떨까. 12년의 행적에서 시행착오나 실패한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후임자에게 전해줘야 한다. 성공을 이야기하긴 쉬워도 실패를 공개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떠나면서 자신의 오류나 실패사례를 암묵지로 전해주면 ‘초보’ 광역시장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성공담이나 치적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 사람들이 전하고 칭송하고 기록에 남긴다. 그것보다 실패담을 암묵지로 전하는게 가치있는 일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실패를 잊으면 안된다. 망각하면 되풀이 된다. 실패학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실패를 알리는 문제가 아니다. 더이상 답습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수많은 정책들 중에 어느 것이 실패했는가? 당시 왜 그런 결정을 했는가? 의사결정과 추진과정에 어떤 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 어떤 결과를 낳았으며 지금 그 문제는 어떻게 평가를 받는가? 등을 진솔하게 전하면 울산의 앞날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울산에는 원로가 없다고 한다. 오래된 지적이다. 행정뿐 아니라 각 분야마다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를 생각하면 3선 시장은 퇴임 뒤에도 계속 울산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동안 경험한 노하우를 전하고 고향과 지역발전을 위해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암묵지로 실패학을 전하자는 것이다. 3선 시장이 남긴 암묵지를 받은 초보시장…. 생각만 해도 내년 봄, 지방선거가 기다려진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김잠출 국장/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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