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 꼭 봐야 할 ‘토레스 델 파이네’
죽기전 꼭 봐야 할 ‘토레스 델 파이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8.08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관희씨의 남미기행

라스 토레스 산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해 2시간이 지나서야 칠레노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바람이 거셀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둔 네팔 모자를 꺼낼까 말가 망설이고 있는데 갑장인 한 동료가 자기 배낭에서 모자를 꺼내 줬다.

갈 길이 바쁜데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게 여간 정 겹지 않았다. 그 사람은 서울에서 대원군 별장 터를 인수 받아 큰 한국 전통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의 인정과 의리는 일행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칠레노 산장에 도착해 다시 그 분의 도움을 받았다. 샤워장에 도착해서야 수건을 가져 오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그때 그는 자수가 예쁘게 새겨진 얇은 수건 하나를 건네줬다.

자수 놓은 솜씨로 봐 여성이 만든 것임이 틀림없는데 되돌려 주려니까 그냥 쓰라고 했다.

트레킹 내내 이 예쁜 수건을 자주 이용했고 집에까지 가지고 와 고이 보관하고 있다. ‘건달프’ 이 이름은 일행 중 한 명이 그에게 부친 애칭이다. 꼭 맞아 떨어지는 별칭이다. 그는 ‘반지의 제왕’의 건달프 처럼 여행 기간 동안 앞에서 우리를 리드했고 언제나 연장자들을 그림자처럼 보필해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라스 토레스 산장에서 칠레노 산장까지 가는데 고개를 서너개 넘어야 했다. 바람이 너무 세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행은 섰다 가다를 수없이 반복해가며 간신히 칠레노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람의 대지 파타고니아에 온 것을 실감한 하루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돼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방장이 배식이 끝나면 자기들이 멋진 노래를 선물할 테니 동참해주면 고맙겠노라고 전달해 왔다.

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산악 가이드들로서 휴식 시간을 이용해 잠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남자 주방장 2명이 주방 모자를 벗고 호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더니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 맙소사. 그 노래는 바로 한국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이었다. 이역만리 깊은 산골 칠레노 산장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누가 꿈이나 꿨겠는가.

우리 일행은 감격해서 손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옆 자리에 있던 일본 여행객들은 기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려고 그랬는지 모두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W 트렉의 첫 트레킹이 시작됐다. 칠레노 산장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총 16km의 트레킹이었다.

계곡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렝가스 숲을 한 시간 쯤 거슬러 올라가자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갖가지 모양에다 색깔도 서로 다른 야생화들은 푸른 이끼, 기괴한 바위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폭의 산수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야생화지대를 넘어서자 화산지대가 나타났고 이어 토레스 델 파이네가 그 자태를 선명히 드러냈다. 눈과 화산 모래와 빙하가 엉클어진 지역을 지나자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가 나타났다. 칠레노 산장을 떠난지 2시간여 만이었다.

짙은 에메랄드 빛 호수를 품고 있는 3개의 탑 모양 암봉이 웅장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얀 눈과 빙하, 구름 떼가 암봉 아래를 에워싸고 있었다. 산위의 파란 하늘은 태고의 신비를 머금은 듯 짙은 청색을 띠고 있었다. 우주선을 타고 머나먼 별 나라에 온 느낌이 드는 것은 어인 조화란 말인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