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
둔황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7.3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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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막고굴에서 다시 서쪽으로 60㎞정도 가면 양관이 있다. 양관 가는 길은 사막화돼 가고 있는 평야이며 태양빛은 강렬해 과거 변방의 황량함이 그대로 묻어있다. 양관 부근에 이르면 초목이 보이기 시작하고 동네 어귀에는 포도밭이 반긴다. 거기에서는 지하 샘물을 끌어올려 관개농업을 하고 있는데, 그 옛날에도 고원과 황하 사막을 건너 변방의 마지막 관문에 이른 여행객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며 여독을 달랬던 오아시스였을 것이다.

지금은 양관 서쪽 지역도 중국에 편입돼 있었지만, 당시 양관은 양관 동북쪽에 위치한 옥문관과 함께 실크로드의 중국 측 마지막 관문으로서 이 너머 서쪽 지역은 바로 서역 땅이었던 것이다. 양관은 서한 시기 당시 군사력이 막강했던 흉노족이 변방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을 막고 서역을 관리하기 위해 옥문관과 함께 건설된 관문이다.

당시 많은 이들이 이 관문을 넘어가면서 가족들과 이별의 아픔을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양관은 성당시인 왕유의 ‘안서로 떠나는 원이를 송별하며’라는 시에 그 이름이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위성 땅, 아침 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여관집 둘레 푸른 버들 빛

더욱 산뜻해라

그대여 권하노니

다시 한 잔의 술을 들라

서쪽으로 양관 땅에 나가면

벗이 없으리라

친구 원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양관에 비유하여 지은 시이다.

이곳에는 당시 관리들이 일종의 비자업무를 담당했던 사무실도 있고,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들이 석별의 정을 나누며 가무와 음주를 즐기고 공연도 함께 즐겼던 자취가 남아있다. 실크로드는 둔황을 나오면서 북쪽 길과 남쪽 길로 나뉘는데, 옥문관은 서역의 북쪽 길로 진입하는 관문이고, 양관은 서역 남쪽 길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그리고 이 길로 나가면 선선, 우전, 사거 등의 국가와 통했다.

옥문관 주위에는 한 장성(長城)과 하창성이 있다. 한 장성은 거대한 용이 누워있는 형상으로서 서한 시기에 중원 왕조가 흉노족 침입을 막고 변방 관리를 강화하며 백성을 안정시키고 실크로드의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하서주랑의 금탑, 가욕관, 옥문, 안서, 둔황 지역에 쌓은 장성이다. 옥문관 동쪽 15㎞에 위치한 하창성은 한 이후 군인들이나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로 왕래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군수보급 창고이자 공급기지다. 2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내 연못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한편 둔황 지역의 요리는 중원지역의 음식에 서역음식이 가미된 점이 특징이다. 사막과 황량한 평야, 그리고 황토고원으로 이루어진 이곳에서는 당나귀와 낙타가 운송수단이 되는 동시에 먹을거리로도 활용됐다. 그래서 둔황의 음식 중에는 이들을 재료로 해서 만든 음식이 많다.

당나귀고기 요리로는 당나귀 고기완자, 당나귀 고기볶음, 당나귀고기볶음면(紅燒驪肉) 등이 있다. 당나귀고기는 칠면조 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소고기 맛을 합쳐놓은 듯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질감이 특징이다. 낙타발요리(駝掌)는 낙타 발바닥 중 힘줄 부분을 잘게 썬 후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볶아 묽은 소스를 얹고 주변을 흰 크림으로 장식한 요리이다. 중국은 어디를 가든 유구한 역사문화와 함께 다양하고 화려한 음식문화가 여행객을 맞이하는 음식 천국임에 틀림없다.

(울산대학교 국제학부 중국어중국학전공 이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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