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해안엔 ‘질서’도 ‘비움’도 없다
180㎞해안엔 ‘질서’도 ‘비움’도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7.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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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디자인
▲ 고층건물로 인해 해안선 조망이 파괴된 방어진항.

지난 토요일이 초복이었다. 그래서인지 장마가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불볕더위는 몇 차례 폭염경보까지 발령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불볕이 쏟아지는 여름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를 찾게 된다.

울산은 180㎞가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울산미포산업단지와 온산산업단지같은 국가산업단지가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긴 해안선을 시민들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더구나 도시 남쪽 서생면과 부산 기장군 접경지역은 국내 최대 원전단지가 자리 잡고 있고, 시 북쪽 경계선의 경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월성원전 단지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울산에서 해안선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북구 정자와 동구 주전, 일산해수욕장에서 대왕암공원을 거쳐 방어진 화암마을까지 구간이다. 남구의 경우는 장생포해양공원 일대 정도가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고, 울주군은 강양에서 진하해수욕장과 간절곶을 거쳐 나사리 해안 정도까지가 개방돼 있다. 중구는 공식적으로 해안선과 접한 장소가 전무하다.

▲ 해변풍경을 잘 살려낸 제주도 섭지코지.

▲ 여러가지 조형물들로 어지러운 풍경의 간절곶.

20세기 이전의 울산을 생각해 보면 앞에 열거한 해안 이외에 북구 염포나 효문동 해안가와 중구 반구동 일대, 남구 성암동 해안과 하개마을, 울주군 덕하부근은 상선이 출입하고 해산물과 소금생산으로 활기 찼던 곳이다. 특히, 울주군 온산읍 일대의 방도리, 산암리, 이진리, 당월리, 우봉리 등은 복어와 미역을 비롯한 해산물 생산으로 유명했다.

이런 울산이었지만 1943년부터 본격화된 공업단지 개발로 해안지역의 드넓은 토지는 공장용지가 되고 바다는 메워져 부두가 생기고 인공해안선이 늘어갔다. 특히, 1962년 이후에는 남구일대 바닷가가 공장용지로 전환되고, 1970년대에는 동구 미포만과 온산일대 해안선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섰다. 1990년대가 되면 공해주민 이주사업으로 대부분의 해안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었고, 그 결과는 현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국가 주도로 개발된 공업단지가 울산의 해안선 일대에 광범위 하게 자리 잡으면서 염포영성 터와 염포왜관 터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방어진 반도에 자리 잡은 풍광 수려했던 은모래 해안과 바위해안도 대부분 매립되거나 깎여 나갔다. 남구 성암동 개운포성은 쓰레기소각장과 쓰레기매립장이 둘러싼 가운데 송전탑이 목을 누르고 있다. 이 일대의 패총 유적과 처용암은 공사 중인 해안도로와 신항만 인입철도가 준공되면 지금 모습을 남기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일제강점기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춘도는 방파제와 돌제로 포위된 지 이미 오래돼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진리 해안 범바위도, 고려시대 유적이 발견된 이진리 연자도도 공단조성을 위한 매립으로 깎여 나가고 육지가 돼버렸다.

▲ 후쿠오카의 해안디자인(마리존).

▲ 세련되지 못한 숙박시설로 채워진 일산진.

이처럼 울산지역 해안선을 자세하게 더듬어 본 것은 해안선이 울산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 도시의 특징은 자연을 바탕으로 한 입지여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즉, 그 지역의 주민들이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 왔는가 하는 점이 도시의 개성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자연풍광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면 그곳이 도시일수는 없고, 반면에 자연이 만들어낸 뛰어난 풍경이 없어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도시도 많다. 그런데 더욱 바람직한 것은 그 도시를 품고 있는 자연도 아름답고, 도시모습도 그 자연과 잘 조화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울산은 참으로 아쉬운 점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너무 짧은 시간에 잃어버린 것은 압축성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울산이 선진국 도시처럼 보다 느린 속도와 스케일로 도시화가 진전되고 산업화가 이루어 졌다면 지금 같은 모습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사작전처럼 진행된 공업단지 만들기는 우리 스스로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안고 가야하는 장기부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 미래 울산의 해안선 디자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디자인 전략의 핵심은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해안선의 원형을 찾는 것, 그리고 수요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보수적인 태도란, 개발가능한 해안선의 경우 최대개발이 아니라 최소개발을 목표로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란 높이와 연면적 같은 규모는 물론, 색상, 형태, 재료 등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울산의 해안선은 더 이상 무엇을 늘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해안선의 본래 모습을 찾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과거에는 180㎞가 넘는 울산의 해안선 거의 전부가 자연 상태였다. 이 말은 자연 상태의 해안선이 그다지 귀하지 않았으며, 해안을 찾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풍광을 즐기는 사람 역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는 의미다. 당시는 자연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적당한 수준의 가공을 통해 편의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반면 지금은 자연 상태의 바다모습이 귀한 시대가 됐다. 인공적인 요소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저 자연 그대로의 바다만 볼 수 있는 것이 경쟁력이 된 시대이다.

세번째는 수요자 중심 디자인 방향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은 울산시에만 120만명 가까운 시민이 거주하고 있어서 바다를 찾고 즐기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뿐 아니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밀양, 양산 등 해안선과 접하지 않고 있는 멀고 가까운 도시 주민도 울산을 찾게 됐다. 이런 시대인 만큼 해안선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찾는 이들의 방문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련되지 못한 건축물과 맛없고 비싼 먹거리, 지저분한 바다 풍경만 보인다면 아무도 그런 바다를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냉정하게 울산의 해안선을 돌아보자.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 간절곶, 고래특구인 장생포 해양공원, 수 십 만 평 송림이 우거진 동구 대왕암공원, 그리고 주전과 정자 바닷가는 분명 매력 있지만, 풍경만 놓고 보면 국내만 해도 멋진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이들 장소에서도 공장 굴뚝과 크레인이 보이고, 요트와 여객선이 아닌 대형 화물선만 보이는 풍경은 숨길 길이 없다. 결국 방문객이 원하는 매력 있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 그나마 해안선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간절곶을 예로 들어 보자. 이곳 풍경의 주인은 당연히 바다다. 바위 해안과 하얀 등대가 주인공이고 그것이 돋보여야 하는데, 너무 많은 조연들이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다. 간절곶을 찾아서 바다와 일출을 바라보는 이의 눈에 하늘, 태양, 바다, 바위, 풀밭, 갈매기 이외의 요소는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그렇게 되는 때가 간절곶 해안 디자인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본다. 대왕암공원은 푸른 솔숲과 함께 마치 제주도 성산이나 섭지코지같은 해변풍경을 잘 살려낼 때 진정 사람들이 찾고 싶어 할 것이다. 주전이나 정자해변 역시 자연은 자연 그대로, 건축물이나 시설물은 그 자연과 어울리는 스케일과 모습을 갖출 때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 해변에 인접한 유포석보, 서생포왜성, 유포봉수대, 울기등대, 간절곶 등대 같은 문화유산도 함께 고려한 해안디자인이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도시디자인의 기본은 질 높은 자연 요소를 최대한 살려주고, 앞 시대의 유산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의 주인공과 조연, 즉 그림으로 돋보여야 할 것과 그것을 지지 해주는 배경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울산 해안선 디자인의 경우 얼마 남지 않은 자연 요소를 더욱 강화하는, 말하자면 풍경에 질서를 부여하는 비움의 도시 디자인 전략이 특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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