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건축이 세계적 도시 만든다
세계적 건축이 세계적 도시 만든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7.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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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피사의 사탑.

울산을 외형적 모습이라도 명품 도시 반열에 올리자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될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세계적 유명 건축 작가의 작품을 울산 땅에 남긴다면 그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유명세의 건물이 울산에 들어서면 건축을 공부하거나 건축 관련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울산으로 몰려들 것이고, 또 전 세계의 건축 관련 잡지와 작품집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가 지속적으로 울산의 작품을 선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세계적인 건축가’ 또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란 문자 그대로 적어도 건축에 관심 있거나 건축을 전공한 이들이라면 한 두 번은 이름을 접한 정도의 인물이라야 하고, 이왕이면 세계건축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좋다. 최근 들어 이런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잘 알려진 건축가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이라크계 영국건축가인 자하 하디드 여사, 서울대 미술관을 설계한 렘 쿨하스(Rem Koolhaas), 렘쿨하스와 함께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등이 다. 이 가운데 자하 하디드는 자유로운 건축형태를 디자인 한 것으로 유명한데, 2004년에는 여성최초 건축 디자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물로는 일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유명하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전 세계에 그의 팬이 있다. 1941년생인 그는 최종학력이 공고졸업이지만 독학으로 건축설계를 공부해서 1987년부터 예일, 하버드,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1995년에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부터는 일본을 대표하는 도쿄대학 건축과 전임교수가 됐다. 자연을 배려한 디자인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관심이 많은 그는 우리나라에도 원주 한솔뮤지엄과 제주도 섭지코지의 지니어스 로사이, 글라스 하우스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대부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개인 소유의 전시관 건축이다.

사실, 외국의 거물 건축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건축가인 김수근씨나 김중업씨 작품 역시 건축 공부를 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찾아보는 명소가 된 곳이 많다. 이 두 작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현존 건축가 가운데 민현식씨나 승효상씨 같은 건축가도 국내는 물론 건축 전공자라면 외국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작품들이 우리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직 국내건축 설계 시장이 열려 있지 않아서 우리나라 건축사 면허가 없는 외국 작가가 직접 일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건축설계의 가치가 널리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풍토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으며, 특히 공공건축물의 경우 민간 건축물에 비해서 설계비 산정, 건축설계작품 선정 방식 등이 더욱 까다로운 것도 원인중의 하나다.

▲ 일본 대표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아와지섬 '꿈의 무대'.

지금 울산에는 시립도서관과 시립미술관 건립이 결정돼 추진 중에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울산 유치가 꼭 필요한 산업박물관 프로젝트도 있다. 만일 현재 울산에서 진행 중인 공공건축 설계 프로젝트에 이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나아가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면서 그들 가운데 당선작이 나온 다면 어떨까.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선정돼 그 작품으로 인해서 울산이라는 도시는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세계 건축인들의 화제거리가 되고 방문하고픈 땅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명품도시로의 지름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는 설계공모를 통해 덴마크 건축가인 요른 웃존(Joern Utzon)이 설계한 작품이 당선된 것이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캐나다 출신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작품이다. 일본 도쿄의 경우는 인구 1천만 규모의 대도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의 관점에서 기억하고 있겠지만 살아 있는 ‘현대 건축박물관’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말은 현재까지 활약 중인 전 세계 유명 건축가의 설계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각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 건축물의 작가가 반드시 그 나라 사람일 필요는 없다.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한다는 의미는 일자리가 늘어나서 우수한 인재를 많이 끌어들인다는 말과 같다. 이 경우 건축설계 분야라면 많은 작가가 모여드는 것도 되겠지만 많은 작가의 작품들로 도시가 채워지는 것이라고 해도 틀린 의미는 아니다.

▲ 구마모토의 아트폴리스 ‘호타쿠보 아파트’

최근 울산시와 교류가 늘어나고 있는 일본 구마모토는 1988년부터 현청을 중심으로 아트폴리스(Art-poli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현 지사였고 나중에 일본 총리가 된 호소카와(細川護熙)가 1987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BA(국제건축전)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한 이 사업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지방도시가 살아나가는 전략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호소카와 지사와 오이타현 출신이면서 건축가인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 도쿄대교수가 협정을 맺어 시작한 이 사업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획일화된 일본의 도시 개발 방향을 반성하고 ‘구마모토다운 전원문화권 창조’를 목표로 했다. 특히,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문화이며, 그 문화는 질 높은 건축에서 시작 된다’는 생각이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

이 프로젝트 최대의 특징은 공공건축 설계 공모에서 기존의 경쟁 입찰 방식을 버리고 커미셔너라고 하는 전문 건축가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한 것이다. 실제로 초대 커미셔너였던 이소자키 교수에 이어 현재는 3대 커미셔너인 건축가 이토도요(伊藤豊雄)가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데, 전체적인 도시디자인의 마스터플랜 없이도 개별 공공건축물의 질이 높으면 그것이 모여서 수준 높은 도시디자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2011년 현재 공공과 민간을 합친 작품은 모두 87개 프로젝트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곳을 주목하는 만큼 견학자들도 많다. 필자의 경우도 1995년부터 울산대 건축과 학생들을 인솔해서 2~3년에 한 번씩은 견학을 다녀오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이나 건축설계 공모 방식은 모두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 또는 경쟁력 있고 자랑할 만한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외국 것을 받드는 사대주의도 아니고, 건축물을 화려하고 비싸게 지어야 한다는 물신주의에서 비롯된 일도 아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물적, 비 물적인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건축물이다. 유능하고 질 높은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궁극적인 목표라면, 이를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공간의 질을 높이는 건축물로 채우는 일일 것이다.

▲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서울대 미술관.

도시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람은 떠나가고 떠나오는 유동적인 존재이지만, 건축물은 한번 지어지면 한 곳에 머무른다. 즉, 건축물은 한 번 지어지면 그 수명이 짧아도 수 십년에서 길면 수 백년을 웃돈다. 건축물은 긴 수명과 함께 일반적으로 규모 또한 크기 때문에 주변 지역과 도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인상을 넘어 아주 깊고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현재 계획 중이거나 앞으로 지어질 공공건축물의 설계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결코 일을 편하게 하기위해서나 남들이 하는 만큼의 방식이나 예산을 투입하거나 감사에 지적되는 일이 두려워 물러서서는 안 될 일이다. 울산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세계 최고수준의 건축설계작품을 울산 땅에 남기는 것이어야 한다.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울산교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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